2004년 국내 2부 투어의 한 대회에서 우승한 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의 홍보담당자가 지어줬다. 귀여운 얼굴에 웃을 때 입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순한 인상을 지닌 그는 뒷심 부족으로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23일 미국 뉴욕 주 피츠퍼드의 로커스트힐CC(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웨그먼스LPGA에서는 달랐다.
지칠 줄 모르는 싸움닭처럼 상대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그토록 원하던 LPGA투어 첫 우승컵을 안았다. 상금은 30만 달러.
3타 차 공동 2위로 최종 4라운드를 출발한 지은희는 5타를 줄여 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짜릿한 역전 우승을 거뒀다. 전날 선두였던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을 2타 차로 제쳤다.
경기 후 페테르센은 “지은희가 마치 불독처럼 집요하게 따라붙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은희는 지난해 국내 투어 19개 대회에서 7차례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LPGA투어 코오롱챔피언십을 포함하면 한 해에 2위만 8차례. 코오롱챔피언십에서는 1타 차 2위였지만 최종 3라운드가 강풍으로 취소되는 바람에 페테르센이 정상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8개월 만에 다시 페테르센과 우승을 다툰 지은희는 4번홀까지 3타를 줄였으나 5번홀과 12번홀 보기로 다시 3타 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그는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으며 보기를 한 페테르센를 다시 1타 차까지 쫓았다.
15번홀(파3)에서 지은희는 8번 아이언으로 한 티샷을 홀 1.8m에 붙인 뒤 버디를 한 반면 페테르센은 티샷이 2단 그린 아래쪽에 떨어져 9.1m나 남긴 뒤 3퍼트로 무너졌다. 지은희가 1타 차 역전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지은희는 17번홀(파5)에서 페테르센과 나란히 버디를 잡아 선두를 지킨 뒤 18번홀(파4)에서 탭인 파로 승리를 자축했다.
한희원(휠라코리아)과 장정(기업은행)은 공동 3위(12언더파)로 대회를 마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지은희 우승 소감
“예선통과 목표였는데… 하늘 나는 것 같아”
“하늘을 나는 것 같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2년 만에 꿈에 그리던 미국LPGA투어 우승컵을 안은 지은희.
경기 가평군 출신인 그는 수상스키 국가대표 출신의 골프광인 아버지 지영기(53) 씨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코치와 캐디 등 1인 다역을 맡은 지 씨는 집 근처 남이섬 입구에 직접 골프연습장까지 지을 만큼 정성을 들였다.
이런 뒷바라지를 받은 지은희는 입문 6개월 만에 주니어 대회 우승을 하더니 2002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해 주목받았다. 프로 2부 투어를 거쳐 2005년 1부 투어에 올랐으나 2년 동안 우승이 없다가 지난해 27개 대회 만에 겨우 첫 승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미국LPGA투어 조건부 시드였지만 국내 성적에 따른 세계 랭킹이 높아 굵직한 4개 대회에만 출전하고도 상금 52위(25만 달러)를 차지해 올 시즌 미국LPGA투어 풀 시드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수상스키 등을 타며 담력을 키운 지은희는 이번 대회에 앞서 3일 동안 호텔에서 푹 쉬다 샷 감각이 떨어져 애를 먹었다. “아이언 샷이 나빠져 사실 예선 통과가 목표였다”는 그는 “쫓는 처지라서 편하게 집중하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며 웃었다.
이번 주 US여자오픈에 출전하는 지은희는 8월 하이원컵부터는 국내 투어에 복귀할 계획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