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살아남았다…박인비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1일 02시 58분



국내에는 이름조차 낯선 박인비(20).

그는 30일 미국 미네소타 주 에디나의 인터라켄CC(파73)에서 끝난 메이저 골프대회인 제63회 US여자오픈에서 짜릿한 역전 우승을 거뒀다.

박인비는 최종 4라운드에서 2타를 줄여 합계 9언더파로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데뷔 후 첫 우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12일 20세 생일을 맞는 그는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면서 세운 대회 최연소 챔피언 기록도 갈아 치웠다.

이 대회 사상 최고인 58만5000달러(약 6억1000만 원)의 우승 상금을 받으며 시즌 상금 100만8023달러로 상금 랭킹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높은 4위까지 뛰어올랐다.

이로써 ‘코리아 군단’은 지난주 웨그먼스대회 우승 이후 2주 연속 우승이자 6월 들어서만 3승째를 올렸다.

선두와 2타 차 공동 3위로 출발했지만 경쟁자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박인비는 1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을 넘겼으나 칩인 버디를 잡은 뒤 2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했다. 반면 선두였던 스테이시 루이스와 2위 폴라 크리머(이상 미국)는 2번홀에서 나란히 더블보기를 해 선두 자리를 내줬다. 일찌감치 단독선두에 나선 박인비는 정교한 쇼트 게임과 안정된 퍼트 감각으로 스코어를 지켜 나갔다.

우승 경쟁자의 희비는 9번홀(파4·413야드)에서 엇갈렸다. 이 홀은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데다 가파른 경사로 조성돼 있어 까다로운 홀. 이날 박인비는 두 번째 샷이 짧았고 세 번째 샷은 컵을 지나쳐 4m 거리의 어려운 내리막 파 퍼트를 남겼지만 침착하게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반면 크리머는 더블보기로 무너졌고 전날 단독선두였던 루이스도 보기를 범했다.

박인비는 상승세를 이어 13번 홀(파5) 버디로 4타 차까지 달아나 승리를 굳혔다. 반면 크리머는 전반에만 5타를 잃었고 루이스 역시 4오버파로 자멸했다.

박인비와 동갑내기인 김인경과 브라질 교포 안젤라 박은 공동 3위(4언더파)로 경기를 마쳤다. 메이저 첫 승에 목마른 김미현(KTF)은 공동 6위(3언더파)에 머문 뒤 12월 결혼을 약속한 유도 스타 이원희와 1분 가까이 포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올해 말 은퇴를 앞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공동 24위(3오버파)에 그쳤으나 18번홀에서 199야드를 남기고 6번 아이언으로 한 3번째 샷이 컵에 빨려 들어가는 이글로 US여자오픈 고별무대를 마무리했다.

에디나=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경기 이모저모

● 우승 깃발사인이 치아 두 개 값?

○…박인비는 지난주 웨그먼스 대회에서 마지막 날 18번홀에서 드라이버로 친 공으로 한 미국인 여성 갤러리의 얼굴을 맞혀 치아 2개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혔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다. 구급차에 실려 간 피해 여성이 다행히 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박인비는 “내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 기념 깃발에 사인을 해서 그분에게 보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 동갑내기 오지영 김인경과 뒤풀이

○…US여자오픈 시상식이 끝난 후 박인비는 미국 미네소타 주 에디나의 한 한국식당에서 스무 살 동갑내기 오지영 김인경 신지애와 저녁 식사를 하며 우승 뒤풀이를 했다. 이 중 오지영과 김인경은 박인비가 18번홀에서 챔피언 버디 퍼트를 한 뒤 그린에 몰려가 맥주를 부으며 축하해 남다른 우정을 과시했다. ‘박세리 키드’로 불리며 한국 여자골프의 세대교체를 주도하는 차세대 유망주로 꼽히는 이들은 콜라로 건배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 스폰서 없어 LPGA 모자 쓰고 출전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로고가 찍힌 모자를 쓰고 나와 눈길. 아직 메인 스폰서가 없기에 LPGA에서 선수들에게 지급한 모자를 착용한 것. 박인비를 가르치고 있는 백종석 프로는 “스카이캐디 등 몇몇 회사로부터 서브 스폰서 후원을 받고 있을 뿐”이라며 “이번 우승을 계기로 좋은 후원자를 만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에디나=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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