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리처럼 될테야” 소녀, 꿈같은 ‘그린 퀸’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1일 02시 58분



박인비, US여자오픈골프 최연소 우승

중1때 美유학… 주니어대회 9승 올리며 주목

작년 LPGA 첫출전… 올해 6차례 톱10 입상

박인비 “나도 이제 어린선수에게 꿈 주는 선수 됐으면…”



1988년 6월 국내 한 골프장. ‘골프광 부부’ 김성자(45) 씨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남편 박건규(46) 씨와 18홀 라운드를 거뜬히 마쳤다.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7월 12일 김 씨는 첫딸을 순산했다. 이때 태어난 아기가 바로 30일 미국 미네소타 주 에디나의 인터라켄CC에서 끝난 제63회 US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역대 최연소 챔피언에 등극한 박인비(20)다.

요즘 한 TV 광고에는 자궁 속에서 발차기를 하는 아이의 초음파 영상이 나온다. ‘맨체스터의 대형 엔진’ 박지성(27)이 천부적인 축구선수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미 어머니 배 속에서 ‘골프 조기교육’을 받은 덕택일까. 어머니의 골프 사랑과 소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올 US여자오픈에서 세계적인 강호들을 꺾고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10년 전 박세리(31)가 이 대회에서 ‘맨발 투혼(양말을 벗고 워터해저드에 들어가 멋지게 공을 쳐낸 것)’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받아 이틀 뒤 골프채를 잡은 지 꼭 10년 만이다.

1998년 7월 7일 치러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박세리가 우승하는 순간을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TV로 지켜본 박인비는 “나도 저렇게 골프로 성공하고 싶다”며 골프에 입문한 이른바 수많은 ‘박세리 키드(어린이)’ 중 한 명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골프연습장을 다니던 박인비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초등학교 시절 각종 주니어대회를 석권했고 2000년 겨울 처음 창설된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며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죽전중학교로 진학한 뒤 제주도지사배 주니어선수권대회 중등부에서 우승한 박인비는 학업과 골프를 병행할 수 있는 미국 유학을 결심했고 어머니와 함께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도 박인비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2001년 주니어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32강에 오른 박인비는 다음 해에는 이 대회에서 14세의 나이로 정상을 차지했다.

전 과목 A를 받을 만큼 공부를 잘하면서도 미국 주니어대회에서 통산 9승을 거둔 그의 다음 목표는 누구나 꿈꾸는 프로 전향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곧바로 프로에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2006년 LPGA투어 사무국이 LPGA 정규투어 진출의 등용문이었던 2부 투어(퓨처스 투어)의 연령 제한을 만 18세에서 17세로 낮추면서 박인비는 한 해 일찍 퓨처스 투어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해서 박인비의 최연소(19세 11개월) US여자오픈 정상 등극이 가능했다.

퓨처스 투어 상금 랭킹 3위에 오르며 2007년 LPGA 정규투어 출전권을 거머쥔 박인비는 우승 없이 톱10에 두 차례 드는 성적을 남겼고 올해는 이번 대회 직전까지 15개 대회에서 다섯 차례 톱10에 입상했다.

박인비는 마침내 16번째 출전한 대회인 2008 US여자오픈에서 순간 최고 시속 32km의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의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는 250야드 정도로 장타자는 아니지만 퍼트가 정확한 것이 강점.

“PAK(박세리)의 자리를 PARK(박인비)가 대신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은 박인비의 올 US여자오픈 정상 등극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편 대회가 열린 미네소타 주에는 한국 교민 1만여 명이 살고 있는데 한국 입양아는 그 두 배인 2만 명이 넘는다. 그들은 모국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향수에 젖는 일이 잦다. 하지만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갈등과 시위대와 경찰의 대립, 경기 침체 같은 우울한 소식만 들려와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10년 전 이민 온 남홍규(42) 씨는 “한국의 시국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우리 어린 선수가 이렇게 큰 대회에서 우승해 뿌듯하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10년 전 세리 언니의 우승 장면이 골프를 전혀 몰랐던 내게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나도 이제 나보다 어린 선수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박인비는 누구?

△생년월일=1988년 7월 12일 △출생지=서울

△가족관계=아버지 박건규(46) 씨와 어머니 김성자(45) 씨의 2녀 중 첫째

△출신교=성남시 분당 서현초등학교→죽전중 1학년 때 미국 유학→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UNLV) 1년 중퇴→2008년 광운대 골프 특기생 입학(인터넷 원격 수업)

△골프 시작=1998년(초등학교 4학년)

△주요 아마추어 경력=미국 주니어 대회 통산 9승

△프로 전향=2006년 △스승=백종석 프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데뷔=2007년

△좋아하는 음식=해산물(조개 새우 등)

△좋아하는 연예인=조인성

△취미=한국 멜로드라마 컴퓨터로 내려받아 보기

에디나=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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