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키드’의 시대…19세 박인비 최연소 US 여자오픈 정복 신화

  • 입력 2008년 7월 1일 07시 53분


박세리 US 여자오픈 우승에 감동 골프입문 …10년 만에 당당히 메이저 퀸 대열에

최종일 선두에 2타 뒤진 3위 출발 … 9언더 역전 우승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8년 7월 7일. 박인비(19)는 가족들과 함께 TV 중계로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엔 왜 새벽 3시에 골프 중계를 봐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모두 열렬한 골프 팬이었기 때문에 함께 TV를 지켜봤죠. 박세리 언니의 우승은 국민들에게 골프에 관한 큰 인상을 남겼고, 그것이 계기가 돼 저도 골프를 시작했어요. 10년 뒤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세리 언니 정말 고마워요.”

1998년 당시 분당 서현초등학교 4학년이던 박인비는 그 경기를 보고 골프채를 쥐었다. 아버지의 권유였지만 ‘나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버지 박건규(46) 씨는 그때부터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소녀를 골프영재로 만든 ‘골프 파더’‘박세리 키드’의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살리려고 12살의 어린 딸을 외국으로 보냈다. ‘기러기 아빠’는 30일 뜬 눈을 세우며 TV를 통해 딸의 승리를 기원했다. 박인비는 우승이 확정된 순간 곁에서 애를 태우고 있던 어머니 김성자(45) 씨와 포옹을 하며 그동안의 고생을 한 순간에 날려버렸다.

30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에디나 인터라켄골프장(파73.6789야드)에서 열린 제63회 US여자오픈골프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박인비는 2언더파 71타를 쳐 최종 합계 9언더파 283타로 역전승을 거뒀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4라운드를 맞이했지만 선두인 스테이시 루이스와 폴라 크리머가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안정된 플레이를 펼치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박인비는 1998년 박세리(31), 2005년 김주연(27)의 우승 이후 세 번째 US오픈 트로피를 차지하며 한국인 우승자 계보를 이었다.

1988년 7월23일생으로 만 20세가 되지 않아(19년 11개월 6일), 박세리가 기록했던 20년 9개월 8일의 기록을 깨며 대회 최연소 우승 기록도 갈아 치웠다.

박인비는 “아직도 우승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빨리 박세리 언니가 우승한 US오픈에서 우승컵을 차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감격해 했다.

2008년 박인비의 우승 뒤에는 1998년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있었다.

현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약중인 박세리 키드는 김송희(20·휠라코리아), 김인경(20·하나금융), 오지영(20·에머슨퍼시픽), 민나온(20) 등으로 모두 박세리가 US오픈 우승을 차지하던 해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1988년생이다. KLPGA의 지존 신지애(하이마트)도 마찬가지다.

US오픈 직전까지 올 시즌 LPGA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이 기록한 2승 역시 박세리가 우승하던 당시에 초등학생으로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던 이선화(긴트리뷰트)와 지은희(웨그먼스LPGA)의 손에서 탄생했다. LPGA에서 활약중인 최나연(21·SK텔레콤)과 박희영(21·하나금융) 이지영(22·하이마트) 등도 ‘세리 언니를 보면서 프로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 박세리 키드다.

이처럼 박세리, 김미현(31·KTF), 한희원(30·휠라코리아), 박지은(29·나이키골프), 장정(28·기업은행) 등으로 대표되었던 한국낭자군단의 무게 중심은 이제 서서히 박세리 키드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들 무서운 골프 소녀들의 뒤에는 성공을 위해 가정을 희생해간 수많은 기러기 아빠와 엄마의 눈물과 뒷바라지가 있었다. 어린이에게 희망을 안긴 멘토와 자식을 위한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기러기 부모가 있는 한 한국의 여자골프는 앞으로도 전 세계를 주름잡을 전망이다.

한편 박인비는 에비앙 마스터스와 브리티시여자오픈까지 참가한 뒤, 8월 중 귀국해 국내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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