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왕자’ 나달, 페데러 꺾고 윔블던테니스 첫 정상에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8일 03시 01분



코트에는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7시간 가까이 끝날 줄 모르던 그들의 승부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신의 아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데러(27·스위스)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허무하게 네트에 걸렸다. 승리를 확정지은 ‘왼손 천재’ 라파엘 나달(22·스페인)은 코트에 벌떡 누워 두 팔을 뻗으며 감격스러워했다. 새로운 테니스 제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이었다.

7일 영국 런던 인근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끝난 윔블던테니스 남자단식 결승.

세계 2위 나달은 강력한 파워와 예리한 스트로크를 앞세워 6연패를 노리던 세계 1위 페데러를 3-2(6-4, 6-4, 6-7<5-7>, 6-7<8-10>, 9-7)로 눌렀다.

비로 예정보다 35분 늦은 현지 시간 오후 2시 35분 시작된 경기는 비로 두 차례 중단되면서 오후 9시 16분에야 끝이 났다. 경기 시간만 해도 131년 윔블던 역사상 가장 긴 4시간 48분이나 걸릴 만큼 치열했기에 역대 최고의 경기였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나달은 이로써 최근 2년 연속 페데러의 벽에 막혀 준우승에 그친 한을 털어내며 윔블던 첫 정상에 섰다.

프랑스오픈에서만 4년 연속 우승하며 붙었던 ‘클레이코트 전문’이란 꼬리표도 뗐다. 통산 5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컵과 함께 우승상금 75만 파운드(약 15억6000만 원)를 거머쥐었고 1980년 비욘 보리(스웨덴) 이후 28년 만에 한 해에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동시 석권했다.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서 태어나 흙바닥에서 축구와 테니스를 즐기다 라켓을 선택했던 나달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윔블던 우승의 꿈을 드디어 이뤘다”고 말했다.

1966년 마누엘 산타나 이후 스페인 선수로는 42년 만에 윔블던을 제패하면서 스페인 언론은 최근 유로(유럽축구선수권대회) 2008 우승에 이은 경사를 대서특필했다.

반면 지난달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나달에게 0-3으로 참패했던 페데러는 6년 가까이 패배를 모르며 65연승을 질주하던 자신의 텃밭인 잔디코트에서도 설욕에 실패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달이 자신의 약점인 백핸드를 집요하게 공략하면서 고전한 페데러는 나달(27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52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1, 2세트를 따내며 기세를 올린 나달은 3세트를 내준 뒤 4세트에서 5-2까지 앞서 경기를 매듭짓는 듯했다. 하지만 페데러에게 내리 4게임을 내준 뒤 타이브레이크에서 8-10으로 패했다. 마지막 5세트에 나달은 7-7에서 페데러의 서브게임을 따낸 뒤 자신의 서브게임을 지켜 대미를 장식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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