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주의가 닥터K를 키운다

  • 입력 2008년 7월 29일 09시 09분


현대 야구서 각광받는 탈삼진 기록 왜?

월드시리즈 7차전 9회말 투아웃 주자 만루 풀카운트. 타석에 선 타자는 지긋이 투수를 노려보며 운명을 결정지을 다음 공을 기다린다. 심장은 터질 듯이 요동치고 관중석과 TV를 통해 경기를 바라보는 팬들은 굳게 쥔 두 손이 땀으로 가득 찬다. 마침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났고 타자의 방망이가 공의 궤적을 쫓는다.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공은 훌쩍 펜스를 넘어가면서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이 터져 나온다.

선수라면, 아니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의 장면이다. 모든 시선과 환호는 홈런을 친 타자를 쫓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마운드를 내려가는 투수는 이미 관심밖이다.

그러면 이 반대는 어떨까? 같은 상황에서 155km의 강속구가 바깥쪽을 꽉 차게 들어가고 타자의 배트가 힘없이 허공을 가르는 상황 역시 짜릿하다. 특히 투수들, 혹은 투수가 꿈이었던 팬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더욱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현대 야구는 홈런의 시대이고 현대 타자들은 끊임없이 홈런 기록에 도전하고 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역사가 긴 메이저리그에서 타자 기록 중 홈런처럼 최근 10년간 변화가 잦은 기록은 없었다. 투수들의 분업화가 보편화된 오늘날 투수들이 과거의 기록에 접근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이런 와중에 각광 받는 기록이 탈삼진 기록이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보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15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9이닝당 평균 탈삼진 수가 이닝수보다 많은 수치를 기록한 투수는 단 2명 뿐이었다. 전설의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9.55개)과 다저스의 ‘황금의 왼팔’ 샌디 쿠팩스(9.28개)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3, 4위로 내려앉았다. 지난해까지의 기록을 기준으로 1위는 애리조나의 좌완 항공모함 랜디 존슨으로 무려 10.77개의 삼진을 9이닝당 잡아냈다. 2위는 ‘외계인’ 페드로 마르티네스로 역시 10개가 넘는 10.20개를 기록 중이다.

그들뿐 아니라 상위권에는 최근 투수들이 많이 포진돼 있다. 6위는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한 노모 히데오로 8.74개, 바로 그 밑이 커트 실링으로 8.73개이다. 그 다음은 로저 클레멘스로 8.60개를 기록했다. 그 밖에도 데이비드 콘, 톰 고든 등이 8개 이상의 삼진수를 나타냈다. 박찬호도 이 기록에는 18위인 7.77개의 수치를 보이며 ‘코리안 특급’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개인통산 탈삼진수도 휴스턴 시절의 놀란 라이언이 강속구 투수의 원조인 월터 존슨의 3509개를 넘어선 이후 많은 변동이 있었다. 라이언의 개인통산 5714탈삼진은 이제 삼진 기록의 성배로 남아있다.

44살의 나이로 아직 현역에서 뛰고 있는 랜디 존슨이 7월 26일 현재 4715개로 기록을 연장해 가고 있다. 3위는 현역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로저 클레멘스로 4604개를 기록했다. 그 외에 10위권 내의 선수들은 월터 존슨을 제외하고 모두 60년대 이후에 활동한 선수들이다. 그렉 매덕스도 3개의 삼진만 추가하면 3343삼진으로 10위에 오르게 된다. 3000탈삼진을 돌파한 16명 중 5명이 현역일 정도로 최소한 삼진 부문에서는 현대 투수들이 과거 투수들을 빠르게 앞지르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이다. 먼저 마운드의 분업화로 선발투수들이 과거 투수들보다 더 적은 이닝을 소화하지만 6-7이닝에 모든 힘을 쏟으면서 이닝당 탈삼진수를 높이고 있다. 과거 투수들이 완투를 밥 먹듯 하고, 등판 간격도 짧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맞혀 잡는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는 홈런타자보다 교타자들이 더 많았다. 통산타율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홈런에 대한 두려움이 적기 때문에 맞혀 잡는 투구가 보편적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투수들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역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훨씬 좋아진 체격 조건에 힘까지 붙이고 있다. 메이저리그 사학자들은 60년 전 투수들보다 현대 투수들의 평균 구속이 적게는 시속 5km, 많게는 10km까지 향상됐다고 말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빠른 볼은 삼진을 잡는데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다. 상대적으로 타자들이 큰 것 한방을 노리면서 스윙이 커졌고,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는 결국 많은 삼진으로 이어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조 디마지오는 삼진보다 홈런을 더 많이 치는 타자로 유명했다. 1937년 디마지오는 홈런 46개를 기록하면서 삼진은 37개만 당했다. 디마지오 같은 유형의 타자는 요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타자들이 홈런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투수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요소는 탈삼진 능력이 된 것이다.

타자들의 홈런이 늘어나는 만큼 비례적으로 늘어나는 ‘투수의 꽃’ 탈삼진 퍼레이드도 현대 야구의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송재우|메이저리그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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