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 된 소녀는 오빠가 다니던 태권도장 구경을 갔다. 발로 차고 주먹을 지르는 모습이 멋졌다. 그래서 태권도를 시작했다. 사범 선생님의 호된 훈련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6개월 뒤 소녀는 ‘어린이 태권왕’이 됐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57kg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그해 첫 금메달이었다. 2004년 청주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뒤 도복을 벗었다. 정상에서 시작해 정상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태권도는 그에게 ‘인생의 동반자’와 같다. 항상 성취하고픈 존재였고 앞으로도 항상 같이하고픈 대상이다. 요즘 그는 체육 전문 서적을 뒤적인다. 한국체대에서 체육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재은(28·사진)이다.
체육철학을 선택한 것은 태권도 실무는 물론 체육의 본질을 파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체육철학은 공부하기 정말 어렵다”면서도 “인간에 대한 학문이어서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레슬링 선수 출신이었던 것처럼 체육과 철학은 몸과 마음으로 사색한다는 점에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정재은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태권도가 4체급에서 2개 이상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경선(여 67kg급)은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하고 임수정(여 57kg)은 다양한 공격력이 강점이다. 손태진(남 68kg급)과 차동민(남 80kg 이상급)도 국제 경험은 부족하지만 대진 운에 따라 메달 색깔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재은은 학업을 하는 틈틈이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람들’ 멤버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장윤창(배구) 등 스포츠 스타 30여 명이 한 달에 한 번씩 장애, 보육시설을 찾아가 자장면을 만들어주고 청소를 해주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직함은 이사이지만 월급은 없어요. 선배들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만나죠.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된다는 데 보람을 느껴요.”
정재은의 목표는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것. 작은 학교에서 태권도 꿈나무를 키우거나 머나먼 타국에서 한국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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