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먹고 자란 스무살 ‘미소 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8월 5일 02시 59분



브리티시 여자오픈 최연소 우승 신지애
中3때 어머니 여의고 사실상 소녀가장 역할
“골프만이 희망” 혹독한 훈련… 세계 정상 우뚝


2008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챔피언에 오른 신지애(20·하이마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첫 승을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하며 이제 국내 최고를 뛰어넘어 세계 정상을 향하게 된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강인한 정신력과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긍정의 힘은 그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다.
늘 밝은 미소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뛰어난 붙임성을 자랑한다. 기자회견에서 넉살 좋게 농담을 하거나 까마득한 선배인 박세리 김미현 강수연 등을 만나면 좀처럼 말붙이기도 어려울 텐데 오히려 “언니들 예쁘게 봐 달라”며 넉살을 피우기도 한다. 우승 직후 인터뷰와 대회 시상식에서 유창하지는 않지만 당당하게 영어로 말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밝은 성격 뒤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중3 때인 2003년 11월 이모의 회갑연에 참석하기 위해 두 동생과 함께 전남 영광의 집에서 목포로 가던 어머니의 차를 25t 트럭이 덮쳤다. 이 사고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당시 14세와 8세이던 여동생과 남동생은 목숨을 건졌지만 크게 다쳐 1년 넘게 입원해야 했다. 꿈 많던 15세 신지애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병원비를 대느라 집을 팔아야 할 만큼 가세가 기울었고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병구완으로 밤을 지새운 날이 허다했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골프를 유일한 희망으로 삼은 그는 독하게 훈련에 매달렸다. 초등학교 5학년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양궁을 하다 골프를 시작한 신지애는 그리 주목받는 존재는 아니었으나 시련을 통해 달라졌다. 하체 단련을 위해 아파트 계단을 숱하게 올랐고 드라이버를 90분 동안 500개를 치거나 퍼트 연습을 7시간 연속하는 등 혹독하게 실력을 키웠다. 그 덕분에 함평골프고 시절 우승을 휩쓸며 2학년 때는 프로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당시 국가대표였던 그는 2006 도하 아시아경기 출전을 포기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명예보다는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돈을 먼저 생각해야 될 ‘소녀가장’의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신지애는 2006년부터 프로 데뷔 후 2년 반 동안 국내 대회에서 통산 16승을 거두며 상금으로만 14억 원 넘게 받았다. 소속사 하이마트의 보너스와 해외 투어 상금 등을 합치면 30억 원 넘게 벌어들여 경제적인 안정을 찾아 경기 용인시에 50평형 전세 아파트를 장만했고 외제 승용차를 마련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힘겨운 시절을 잘 알기에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도 앞장서 ‘미소 천사’라는 별명이 붙은 신지애. 그의 질주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 같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