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의 요정이었던 미셸 콴(미국)을 보면 올림픽에서 기량 외의 요소들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다. 콴은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2000년부터 2003년 사이 3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미국 피겨선수권대회는 8연패를 이뤘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98년 나가노 대회 은메달이 최고다. 2002년 안방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는 3위에 머물렀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콴의 피겨 실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4년을 기다린 준비에 2%가 부족했던 것뿐이다. 그 2%는 멘털 부분이다.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다.
올림픽과 같은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평소 실력 발휘 여부다. 미국 스포츠에서 흔히 말하는 ‘Under pressure’ 상황을 이길 수 있어야 메달과 직결된다.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금메달 후보들이 어떻게 좌절했는지를 수없이 봐왔다. 오히려 메달권외의 복병들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자 양궁이 대표적인 예다. 84년 LA올림픽 금메달 후보는 김진호였다. 그러나 우승은 당시 17세의 서향순이었다. 한국은 여자 양궁 개인종목에서 6회 대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매 대회 우승자는 바뀌었다. 물론 물갈이가 잘 이뤄졌다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달리 표현하면 심리적 압박감에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에 가장 심리적 압박을 받는 선수는 수영의 박태환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수영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딸 후보로 꼽고 있다. 그러나 온 국민적 성원은 10대 선수에게는 너무 큰 짐이 된다. 게다가 한국 스포츠는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한 선수로 취급받기 일쑤다. 은메달보다는 오히려 동메달리스트가 환영받는다. 메달 집계방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은 금메달 몇개가 순위를 결정하지만 외국은 총 메달수로 집계한다. 금메달 지상주의다.
미국인들은 큰 경기를 앞둔 운동선수를 격려할 때 “Have a fun!”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우리 말로 하면 “게임을 즐기라”는 뜻이다. 올림픽 출전자라면 올림픽에 나가서 외국 선수들과 친해지고, 그 분위기를 즐기면서 평소와 같은 기량을 발휘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금메달을 놓쳤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갈고 닦은 기량을 평소처럼 발휘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스포츠다.
문상열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