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창]여왕은 떠나도 전설은 남았다

  • 입력 2008년 8월 11일 03시 00분


일본의 ‘유도 여왕’ 다니 료코(33)가 9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여자 48kg급 3회전에서 파레토(아르헨티나)를 물리친 뒤 옷을 고쳐 입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일본의 ‘유도 여왕’ 다니 료코(33)가 9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여자 48kg급 3회전에서 파레토(아르헨티나)를 물리친 뒤 옷을 고쳐 입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일본 유도 자존심’ 다니 동메달에 日관중 환호

9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실내체육관. 오후 7시부터 열리는 유도 여자 48kg급 결선을 앞두고 체육관은 술렁이고 있었다. 관중석의 3분의 2 정도는 일장기를 손에 든 일본인이었다.

이날 결선 티켓은 개막 한참 전에 동이 났다. 한국의 최민호(28·한국마사회)도 이날 결승행이 예상됐지만 국내에서는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대한유도회 직원조차도 예선은 현장에서 관전했지만 결선 입장권은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을 대거 유도 경기장으로 불러 모은 주인공은 ‘유도 여왕’ 다니 료코(33)였다.

다니(당시 다무라 료코)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48kg급 결승에서 북한의 계순희에게 졌다. 이전까지 국제대회 84연승을 달리고 있던 다니였다. 충격에서 벗어난 다니는 계순희가 체급을 올린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잇달아 금메달을 따냈고 유도 사상 최다인 세계선수권 7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1992년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뒤 올림픽에서만 금 2, 은메달 2개를 따낸 그는 유도 종주국 일본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유도 여왕도 흐르는 세월을 메칠 수는 없었다.

1회전에서 일본계 미국 선수인 사야카 마쓰모토를 유효로 누른 다니는 2회전에서 우수건(중국)을 연장 접전 끝에 절반으로 눌렀다. 4강 본선에는 진출했지만 매트 위의 다니는 예전처럼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지 못했다. 업어치기를 자주 시도했지만 메치는 위치가 너무 낮았다. 김석규 MBC 해설위원은 “공격이라기보다 공격당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라며 “힘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니는 4강에서 루마니아의 알리나 알렉산드라 드미트루에게 지도패를 당했다. 경기 종료 10초를 남기고 맹렬하게 공격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올림픽 3연패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웃으며 드미트루에게 악수를 청한 다니는 이내 눈물을 보였다.

동메달 결정전이 열리는 동안 일본 관중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다니는 마지막 올림픽 경기를 한판승으로 장식하고 시상대에 올랐다.

다니가 경기장을 빠져나간 뒤에도 많은 일본 팬은 자리를 지켰다. 16년에 걸쳐 5개의 올림픽 메달을 조국에 안기고 이제 전설로 남게 될 영웅에 대한 예우처럼 보였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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