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애틀랜타 영광 이후 번번이 눈물
12년 전 17세 소녀였던 북한 계순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여자 48kg급 결승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의 다니 료코(33·결혼 전 이름 다무라 료코)를 꺾고 우승한 것. 북한은 애틀랜타에서 금 2, 은 1, 동메달 2개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이제 29세 ‘아줌마 선수’가 된 계순희는 비장한 각오로 베이징에 왔다. 애틀랜타 대회 이후 북한은 금메달을 얻지 못했다. 계순희는 “목표는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이번 금메달은 내가 이전에 땄던 것보다 훨씬 가치 있을 것”이라며 우승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계순희는 11일 베이징 과학기술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유도 여자 57kg급 2회전(16강)에서 바르바라 아렐(프랑스)에게 허리채기 절반을 내주며 무릎을 꿇었다. 아렐이 4강에 오르면 계순희는 패자 부활전을 통해 동메달을 기대해 볼 수 있었지만 아렐은 다음 경기에서 졌다.
계순희는 1회전에서 사브리나 필츠모저(오스트리아)를 경기 종료 44초를 남기고 옆으로 떨어뜨리기 한판으로 누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지만 2회전에서 만난 31세 아렐의 노련한 경기 운영을 당해 내지 못했다. 대한유도회 조용철 전무는 “계순희의 힘과 기술은 여전했다. 충분히 우승할 실력을 갖췄지만 상대의 작전을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애틀랜타 금메달리스트 계순희는 52kg급으로 체급을 올린 시드니 대회에서 동메달, 57kg급으로 출전한 아테네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따냈고 세계선수권에서는 2001년부터 4연패를 달성하며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지만 기대했던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일본의 ‘유도 여왕’ 료코는 이틀 전 48kg급 경기에서 올림픽 3연패를 노렸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북한의 ‘유도 영웅’ 계순희는 8강 문턱도 넘지 못했다. 오랫동안 정상을 지켰던 그들에게 마지막 올림픽 무대는 금메달을 허락하지 않았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