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랭킹 4위인 ‘땅콩검객’ 남현희(27·사진)가 11일 중국 베이징 국가회의중심 펜싱관에서 열린 여자 펜싱 플뢰레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마리아 발렌티나 베찰리(34·이탈리아)와의 접전 끝에 종료 4초를 남기고 5-6으로 역전패하며 금메달을 놓쳤다.
하지만 남현희는 한국 여자펜싱이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44년 만에 첫 메달을 따냈다. 남현희는 키가 154cm로 베찰리(164cm)에 비해 10cm나 작다.
2라운드 직전 다시 1실점해 3-4로 뒤진 3라운드. 남현희는 59초를 남기고 번개 같은 공격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41초를 남기고 베찰리와 거의 동시에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주심이 남현희의 득점을 인정하며 5-4로 승부를 뒤집었다.
그러나 베찰리는 노련했다. 29초를 남기고 5-5 동점을 만든 뒤 종료 직전 남현희의 몸통 공격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남현희는 은메달에 그쳤지만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이탈리아의 조반나 트릴리니를 15-10으로 꺾는 등 강호를 연이어 물리치며 ‘작은 거인’의 힘을 보여줬다.
남현희는 솔직하다.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꼭 이루는 성격이다. 그가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자 펜싱 플뢰레의 간판으로 우뚝 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현희는 성남여중 1학년 때 교실 맨 앞에 앉던 꼬맹이였다. 하지만 멀리뛰기만큼은 반에서 제일 잘했다. 빠른 발과 유연한 몸을 갖고 있던 그를 눈여겨본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남현희는 2005년 독일 세계펜싱선수권 여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한국 펜싱 역사상 첫 금메달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아픔도 있었다. 2006년 1월 태릉선수촌을 무단이탈해 쌍꺼풀 수술을 받아 6개월 자격정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해 12월 도하 아시아경기 여자 플뢰레 개인 및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오르며 ‘성형 논란’을 잠재웠다.
‘연습 때 울더라도 경기에서 웃자’는 말을 좋아한다는 남현희.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 시상대에 오른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