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이 한국 유도의 간판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5월 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이원희를 꺾고 올림픽 티켓을 얻었다.
금메달 유망주 왕기춘이 첫 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을 땄다.
왕기춘은 11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73kg급 결승에서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경기 시작 13초 만에 발목잡아메치기 한판으로 졌다. 싸우기도 전에 허를 찔린 왕기춘은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매트에 주저앉아 허공을 바라봤다.
왕기춘은 1, 2회전을 잇달아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8강전에서 레안드루 구일레이루(브라질)와 연장 접전을 치르는 동안 왼쪽 늑골을 다치며 주춤했다. 응급조치 뒤 테이핑을 한 채 매트에 나와 4강에서 라술 보키에프(타지키스탄)에게 지도승을 거뒀지만 이미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대표팀 안병근 감독은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 검사를 해 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왕기춘은 서울체고 3학년인 2006년에 ‘우상’이었던 이원희의 연습 상대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갔다. 이원희는 왕기춘을 업어치고 메치며 훈련했고, 왕기춘은 이원희의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왕기춘은 대학에 입학한 지난해 초 73kg급에서 이원희와 김재범(23·한국마사회)을 잇달아 꺾고 파란을 일으켰다.
시상대에 올라가서도 눈물을 흘린 왕기춘은 “통증은 참을 수 있었지만 워낙 짧은 시간에 공격을 당했다”며 “응원해 주신 여러분에게 죄송하다. 열심히 했지만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TV 해설위원으로 경기를 지켜본 이원희는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는 마음을 컨트롤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경기를 한판으로 이길 정도로 완벽하지 않으면 금메달을 딸 수 없다”고 아쉬워했지만 “은메달도 대단하다. 고개를 떨어뜨리지 마라”며 격려했다.
왕기춘은 “원희 형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