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후원으로 女핸드볼 베이징 응원 꿈이뤄
부자(父子)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KOREA’가 새겨진 응원 띠를 흔들었고 아들은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한국 핸드볼대표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부자는 함께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13일 한국과 스웨덴의 핸드볼 16강전이 열린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
대구공고 2학년 변수용(17) 군과 아버지 변양수(50) 씨가 관중석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핸드볼 경기를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오기 전부터 계속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지금까지도 그래요.”
변 군은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스 림프종’을 앓고 있는 백혈병 환자다(본보 8월 4일자 참조). 2004년 진단을 받았다. 소년이 힘든 항암 치료를 견뎌낼 수 있었던 데는 4년 전 병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자 핸드볼대표팀의 다큐멘터리가 큰 몫을 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이겨내고 올림픽에서 감동의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얘기는 큰 힘이 됐다.
“허순영 선수를 봐요. 몸싸움을 얼마나 잘하는데요.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변 군은 5월 선생님의 권유로 ‘한국 메이크어위시 재단’의 소원 성취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핸드볼 공에 선수들의 사인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었다. 지난달 태릉선수촌에서 작은 소원을 이룬 변 군은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회봉사단의 도움으로 중국에 가서 핸드볼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가족 모두가 그리던 첫 해외여행이었다.
10일 부모님, 누나와 함께 베이징에 도착한 변 군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11일 양궁 남자대표팀의 금메달 현장에 있었고 12일 한국 선수들의 유도 경기도 관전했다. 그리고 이날 ‘마음속의 영웅’ 여자 핸드볼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는 장면도 지켜봤다.
7월에 정기 검진을 받았다는 변 군은 “담당 의사 선생님이 제가 많이 건강해져 놀라셨다”고 했다. 중학교 때 핸드볼 선수를 했던 아버지 변 씨는 “집에서도 운동을 많이 시킨다”며 자신보다 키가 더 큰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봤다.
경기는 한국의 승리로 끝났다. 선수들이 퇴장하는 것을 지켜본 부자는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밖에는 표를 구하지 못해 들어오지 못한 변 군의 어머니와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꿈을 이룬 소년의 표정은 밝았다. 소년을 지켜보던 아버지도 흐뭇해했다. 부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