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벨을 믿었고 바벨도 그를 믿었다
■ 16년만에 한국 역도 金 사재혁
몸이 성할 날이 없었다. 상처가 아물었다 싶으면 다른 곳을 다쳤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 같은 것. 힘든 재활을 이겨내면서 몸은 더 강해졌다.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의지를 더 굳게 했다.
‘싸군’ 사재혁(23·강원도청)이 세상을 번쩍 들었다. 한국 역도는 16년 만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전병관(56kg급) 이후 처음이다.
사재혁은 13일 베이징 항공항천대 체육관에서 열린 역도 남자 77kg급에서 인상 163kg, 용상 203kg으로 합계 366kg을 들어올렸다. 역도 강국 중국의 리훙리와 들어올린 무게는 같았지만 몸무게가 450g 덜 나갔다. 리훙리는 76.91kg, 사재혁은 76.46kg. 리훙리는 지난해 합계 369kg(인상 168kg, 용상 201kg)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강자다.
사재혁은 용상 3차 시기에서 세계기록(210kg)보다 1kg이 더 나가는 211kg에 도전했지만 바벨을 뒤로 떨어뜨려 세계기록을 세우지는 못했다.
사재혁은 우승 뒤 인터뷰에서 “용상은 자신이 있었다. 인상에서 뒤진 채 용상을 시작했지만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용상 1차 시기를 201kg으로 내린 것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연습 때 인상 167kg, 용상 210kg까지 들어올렸던 사재혁은 “마지막 시도에서 도전한 211kg을 실패한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재혁은 2001년부터 네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 훈련 도중 오른 무릎을 다쳐 처음 메스를 댔고 2003년에는 왼 어깨 부상으로 두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2005년에는 오른 손목을 다쳐 또 수술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악재에 바벨을 놓을 생각도 했다. 사재혁은 “2003년 한국체대에 입학한 뒤 잇달아 어깨 수술을 하면서 2년 가까이 공백기가 있었다. 한때 운동을 그만둘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며 “하지만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기록도 포기하기 아까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 다시 바벨을 잡은 사재혁은 4월 코리아컵 대회에서 한국기록인 365kg(인상 162kg, 용상 203kg)을 들어올리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운도 따랐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77kg급 합계에서 우승한 불가리아의 이반 스토이초프가 올해 도핑 검사에 걸려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 같은 대회 용상에서 동메달을 땄고 합계 5위를 기록했던 사재혁은 코리아컵에서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TV 해설위원으로 사재혁의 경기를 지켜본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전병관은 “재혁이가 금메달을 딸 것으로 확신했다. 기술이 안정되고 경기 운영도 잘한다. 특히 메달 색깔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시기에 기술적인 면이 강한 게 장점”이라며 “도전 정신이 강해 자기 체중에 신경을 쓰지 않고 겁을 내지 않는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라고 덧붙였다. 상비군을 맡고 있는 전병관은 사재혁을 직접 지도한 경험이 있다.
현장에서 아들의 경기 장면을 지켜본 어머니 김선이(45) 씨는 사재혁이 우승을 확정하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았다. “메달만 따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금메달을 따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말한 김 씨는 “재혁이가 그렇게 수술을 많이 했다는 것도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 집에도 알리지 않고 고통을 이겨낸 아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베이징에 오기 전 집이 있는 강원 홍천군 근처의 절에서 매일 불공을 올리며 아들의 선전을 기도했다.
사재혁의 미니홈피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기구와 내가 하나가 될 때 210kg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믿느냐? 나도 널 믿는다! 싸군∼∼∼고고 씽!’
사재혁은 바벨을 믿었고 바벨도 사재혁을 믿었다. ‘믿음의 역도’는 금메달로 돌아왔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