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베이징에 출현했다?
‘괴물’ 류현진(21·한화)이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야구대표팀에 값진 1승을 선사했다. 15일 베이징 우커송 베이스볼필드2에서 벌어진 예선리그 캐나다전에 선발등판해 혼신을 다해 9회까지 5안타 3볼넷 6탈삼진 무실점의 완봉역투를 펼치며 한국의 1-0 승리를 홀로 이끌다시피 했다.
최고 시속 146km짜리 직구와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마음 먹은 대로 꽂아넣으며 좌타자 7명을 선발 라인업에 내세운 캐나다 타선을 꽁꽁 얼려버렸다. 스물한살의 나이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노련하고 배짱 두둑한 피칭이었다.
류현진의 ‘원맨쇼’ 활약에 힘입어 2승을 거둔 한국은 3승의 쿠바와 더불어 유력한 메달 후보임을 과시했다. 아울러 비로 인해 서스펜디드게임이 선언된 전날 중국전(한국시간·17일 오후 7시 재개)의 아쉬움도 털어냈다. 한국은 16일 오후 8시 숙적 일본과 맞붙는다.
이날 경기의 최대 승부처는 9회말 캐나다 공격. 6회 2사 1·3루와 8회 2사 3루 위기를 잇달아 넘기며 완봉승에 도전한 류현진은 9회 선두타자인 3번 마이클 손더스에게 좌전안타를 내주며 일말의 불안감을 드리웠다. 스콧 소먼을 삼진으로 잡았지만 5번타자 닉 웨글러츠에게 빗맞은 우전안타를 허용, 1사 1·3루까지 내몰려 자칫 역전패의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그러나 류현진은 6번 브렛 로리를 얕은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낸데 이어 2사만루서 라이언 래드마노비치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고 3회 정근우의 좌월솔로홈런으로 잡은 1-0의 살얼음판 리드를 끝까지 지켜냈다.
완봉승을 거두긴 했지만 경기 전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았다. 류현진은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 캐나다전에 선발등판해 장염 탓이기는 했지만 고작 1.2이닝 동안 홈런 한개를 포함해 3안타 3실점으로 허망하게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됐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 내내 타선이 침묵해 마운드에 선 류현진의 부담감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될 법했다. 그러나 류현진은 이 모든 어려움을 홀로 극복해냈다.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9회까지 버틴 류현진은 “3월 캐나다전 때는 직구를 너무 많이 맞아 오늘은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변화구 위주로 승부했는데 맞아떨어졌다. 타선이 침묵하는 바람에 부담도 됐지만 여기서 내가 못막으면 오늘 경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결승에 꼭 올라가 1, 2위 싸움을 해보고 싶다”고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베이징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아들아, 네가 자랑스럽다”
류현진 아버지 류재천 씨= 9회말 2사 만루 마지막 타자 승부 때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뒤돌아 서 있었다. 타구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중견수 플라이라서 현진이 엄마하고 부둥켜 안고 울었다. 어떻게 안 울 수가 있겠나. 세상에 이런 경사가 또 어딨겠나. 이렇게 긴장해본 것은 처음이다.
이런 게임은 프로에서도 없었다. 오늘 경기 보느라 담배 한 갑을 피웠다. 2006년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탔을 때보다 더 기쁘다. 끝나자마자 현진이 부모라고 하니까 경기장에 들여보내줘 포옹을 했다. 선수단 버스 안에 같이 올라서도 한 번 더 포옹했다. 오늘은 정말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