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팔 무쇠다리 ‘S라인 헤라클레스’ 세계를 들다

  • 입력 2008년 8월 18일 02시 55분


16일 열린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75kg 이상급 인상 경기에서 140kg을 들어 올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장미란.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16일 열린 베이징 올림픽 역도 여자 75kg 이상급 인상 경기에서 140kg을 들어 올려 세계 신기록을 세운 장미란.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 장미란 금메달 따기까지

합계 326kg 들어 2위와 49kg 차이

역도선수 출신 아버지 역도권유에

처음엔 “왜 여자가 그런걸…” 거부

한창 멋부릴 나이에 바벨과의 씨름

힘겹게 체중 불리고 지옥훈련 견뎌

맡겨 놓았던 금메달이었다. 쉽게 찾아 목에 걸 수도 있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잇단 세계기록으로 온 국민을 기쁘게 했다. 자칫 맥 빠질 수 있는 일방적인 레이스는 그래서 감동의 드라마가 됐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웅변하는 듯했다. 역도는 남자 77kg급 사재혁(23·강원도청)에 이어 두 개의 금메달을 따내 단숨에 최고 ‘효자 종목’이 됐다. 역도가 금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전병관 이후 16년 만이다.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25·고양시청)이 세계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장미란은 16일 베이징 항공항천대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75kg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40kg과 용상 186kg을 기록해 합계 326kg으로 우승했다. 2위 올하 코롭카(우크라이나)와는 49kg이나 차이가 났다. 인상, 용상 각 3번의 시도에서 실패는 한 차례도 없었다.

장미란은 인상 3차 시기에서 140kg을 들어 중국의 무솽솽(24)이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세운 세계기록을 1kg 늘렸다. 용상 2차 시기에서 183kg을 들어 탕궁훙(29)이 아테네 올림픽에서 세운 종전 기록(182kg)을 갈아 치운 장미란은 2분 뒤 186kg을 드는 데 성공해 방금 전에 세운 자신의 기록을 깼다. 합계에서도 무솽솽의 이전 기록(319kg)을 7kg이나 넘었다.


▲ 영상취재 : 베이징 = 신세기 기자

장미란은 도하에서 무솽솽의 막판 뒤집기에 밀려 눈물을 흘렸다. 비록 무솽솽은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장미란은 무솽솽의 기록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며 멋지게 설욕에 성공했다. 역도는 한 국가에서 남자 5체급, 여자 4체급만 출전시킬 수 있다. 중국은 금메달이 불확실한 무솽솽을 제외시켰고 출전한 여자 4체급 모두 금메달을 땄다. 장미란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금메달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며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온통 장미란을 연호하는 관중석에는 아버지 장호철(56) 씨도 앉아 있었다. 젊은 시절 역도 선수를 했던 장 씨는 딸에게 역도를 권유한 주인공이었다. “왜 여자에게 역도를 시키느냐”며 거부하던 장미란은 끈질긴 부모의 설득에 결국 바벨을 잡았다.

공부를 제법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장미란은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먹성이 부쩍 좋아졌다. ‘날아다니는 돈가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장미란의 체중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장 씨는 그런 딸을 보면서 역도를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봤다. 판단은 정확했다.

여자 대표팀 오승우 감독과 김도희 코치도 장미란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오 감독은 “본인이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덕분”이라고 했다. 김 코치는 살을 찌우는 게 지상 과제였던 장미란을 위해 하루 종일 옆에 붙어 있으면서 음식을 해줬다. 한국에서 식재료를 담은 박스만 15개를 가져왔고 이것도 모자라 부지런히 베이징에 있는 할인마트를 들락거렸다.

‘스물다섯 처녀’ 장미란은 한창 멋 부리고 치장할 나이에 힘겹게 체중을 불리고 무거운 역기와 씨름을 했다.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세계를 번쩍 들어 올린 장미란은 너무 아름다웠다.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용상 200kg 들어올리는 첫 여성 될 것”▼

■ 장미란 신기록 어디까지

中 무솽솽과 격차 벌려, 당분간 자신과의 싸움

“200kg을 들어 올리는 최초의 여성이 될 것이다.”

여자 역도 김도희 코치는 장미란이 여자 역도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현재 장미란의 경쟁자는 무솽솽(중국) 정도다. 장미란은 이번 올림픽으로 상승세를 탄 반면 무솽솽은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등 기록 차이도 제법 벌어졌다. 중국이 유망주를 숨겨 두고 준비하지 않는 한 여자 역도 75kg 이상급에서 당분간 장미란의 적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장미란이 가야 할 길은 자신이 세운 신기록을 다시 넘어서는 것이다.

10년 전 장미란의 최고기록은 인상 75kg, 용상 102.5kg, 합계 177.5kg이었다. 그 뒤 계속 상승세를 기록한 장미란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선 합계 302.5kg(인상 130kg, 용상 172.5kg)을 들어 올리며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6년 만에 120kg 이상을 늘린 것.

2007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합계 319kg(인상 138kg, 용상 181kg)을 들어 올리며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장미란은 이번 올림픽에서 아무도 들어 올리지 못했던 인상 140kg과 용상 186kg을 들어 올렸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용상에서 190kg을 돌파해 아무도 생각지 못한 200kg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역도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안효작 역도연맹 전무는 “장미란은 아직 젊기 때문에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장미란은 누구

▽출생=1983년 10월 9일 강원 원주시 ▽소속팀=고양시청 ▽키 170cm, 체중 116.75kg ▽혈액형=A형 ▽출신학교=원주 학성초-상지여중-원주공고-고려대 체육교육학과 재학 중 ▽가족사항=아버지 장호철 씨와 어머니 이현자 씨의 1남 2녀 중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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