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 래드클리프(34·영국)와 같은 선수들에게는 종종 ‘비운’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름난 국제대회를 휩쓸다시피 하다가도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놓치고 마는 선수들. 17일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마라톤 역시 래드클리프를 위한 무대는 아니었다.
래드클리프는 톈안먼 관장에서 궈자티위창까지 이어지는 마라톤(총 42.195km)에 출전했다.
세계기록(2시간15분25초) 보유자인 래드클리프도 당연히 우승후보였다. 7세 때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그는 줄곧 ‘신동’이었다. 2002년 런던 마라톤에서 2시간18분56초로 우승하면서 풀코스 데뷔전을 장식했고, 그해 10월 시카고마라톤에서 곧바로 세계기록을 썼다. 이듬해 런던마라톤에서는 또다시 기록을 1분53초 단축, 여자마라톤에 2시간15분대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1만m에서 4위에 그친 게 시작. 2004년 아테네에서 2관왕(1만m, 마라톤)에 도전했지만 무더운 아테네의 날씨에 발목을 잡혔다. 탈수증세를 보인 래드클리프는 마라톤과 1만m를 모두 중도포기하며 눈물을 삼켰다. 이후 4년은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담금질하는 시기. 2007년 1월 딸을 낳고 9개월 만에 복귀한 뉴욕마라톤에서 래드클리프는 또다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하지만 불운은 다시 시작됐다. 지난해 말 발가락 부상에 이어 5월에는 왼발에 피로 골절이 생겼다. 제대로 된 훈련은 애초에 불가능. 설상가상으로 경기 일주일 전 독거미에 물려 나흘간 훈련을 걸렀다. 팀 동료 켈리 홈스는 “나도 아테네에서 훈련 도중 벌레에 물린 후 800m와 1500m에서 2관왕이 됐다”며 좋은 징조라고 위로하기까지 했다.
실낱같은 희망은 결국 통하지 않았다. 최종 순위는 고작 23위였다. 래드클리프는 “가장 절망적이었던 경기 중 하나”라고 했다. 경기를 앞두고 갑자기 차가워진 기온과 흐린 날씨 때문에 왼쪽 다리의 통증이 악화됐다. 그는 “정말 아팠다. 마치 한 쪽 다리로 뛰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번엔 끝까지 달렸다. 다리를 절룩거리는 래드클리프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래드클리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그는 우승자인 콘스탄티나 토메스쿠(루마니아)를 바라보며 “38세의 나이에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래드클리프는 런던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에 38세가 된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