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언니가 돌아왔다. 이제 아테네의 한(恨)을 푸는 일만 남았다.
오영란(36·벽산건설)은 19일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중국과의 8강전에서 한국을 이끌었다. 심판이 중국의 과격한 동작에도 반칙을 지적하지 않자 중국은 럭비를 방불케 하는 수비로 나왔다. 자칫 위축될 수도 있는 상황.
9-16에서 한국의 공격은 2번 연속 실패했다. 하지만 점수차는 계속 유지됐다. 오영란은 우리 공격수들이 막힐 때마다 귀신같이 공을 막아냈다. 21-16으로 중국이 추격한 상황에서도 중국의 결정적 기회를 삼켜버렸다. 맏언니가 엉덩이를 두드리며 격려하자 문필희는 연속으로 2골을 몰아쳤다. 19개의 선방과 안정적인 팀 리드, 결국 ‘우생순’은 붉은 대륙마저 평정했다.
오영란의 활약은 1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와의 예선 첫 경기. 오영란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평범한 슛이 한국의 골망을 갈랐고, 속공을 연결할 때는 패스미스까지 나왔다.
<스포츠동아> 임오경(37·서울시청감독) 해설위원은 “오영란과 같은 고참 급 선수들은 큰 경기를 앞두고 더 큰 부담감을 갖는다”고 했다. 1개만 더 막았더라면 세계최강이라는 러시아를 잡을 수도 있었다.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떨어진 자신감은 독일과의 예선 두 번째 경기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결국 임영철 감독은 이민희(28·용인시청) 카드를 꺼내들었다. 다행히 이민희는 독일 전 35개 슛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개를 막았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골키퍼에게 8강 토너먼트 이후를 맡길 수는 없었다. 주전수문장의 컨디션을 되살리기 위해 꿋꿋이 오영란에게 골문을 맡겼다. 오영란도 밤늦게까지 비디오 분석을 하며 상대 선수들의 슛 던지는 위치와 각도들을 연구했다. 몸이 가볍지 않다면 머리로라도 막기 위해서였다.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한 감각은 중국전에서 절정에 다다랐다. 팀의 리더역할까지 되찾았다. 브라질과의 예선전에서 패하자 오성옥(36·히포뱅크)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며 후배들을 다독였고, 중국의 거친 파울에도 후배들을 추슬렀다. 오영란은 “한국이 확실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 기쁘다”면서 “4강전에서 2007세계선수권에서 패한 노르웨이에게 꼭 설욕해 딸 서희에게 금메달을 안겨주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베이징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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