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첫 메달… 국민영웅으로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2002년 모로코에서 바레인으로 귀화한 라시드 람지가 19일 육상 남자 1500m에서 1위로 골인한 뒤 국기를 펄럭이며 트랙을 돌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2002년 모로코에서 바레인으로 귀화한 라시드 람지가 19일 육상 남자 1500m에서 1위로 골인한 뒤 국기를 펄럭이며 트랙을 돌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토고-모리셔스-아프간 메달 소식에 환호

파나마-바레인-몽골도 사상 첫 金에 감격

어제까지 47개국 金… 127개국은 노메달

‘삼천만 체력은 오히려 건재하다. … 온몸의 힘을 다 모아 싸우는 역도에 있어 김 군이 백이십키로 오백을 들어 인류로서 큰 힘을 자랑하다니 참으로 민족의 기쁨이 아닐 수 없구나.’

60년 전인 1948년 8월 12일 동아일보 2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당시 런던 올림픽 역도 미들급에서 김성집(89) 옹의 눈부신 활약을 보도한 내용이었다. 김 옹은 광복 후 첫 올림픽에 출전해 사상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다.

기사 내용처럼 당시 김 옹의 쾌거는 국제무대의 변방으로 미미하기만 하던 한국 스포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며 국민을 열광시켰다.

김 옹의 사례처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스포츠 약소국의 값진 메달이 쏟아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따낸 이런 국가들의 메달은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미국)의 수영 8관왕 등극과 중국, 미국의 메달 경쟁 못지않게 신선한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줘 박수갈채를 받기에 충분하다.

전쟁의 포화에 시달린 아프가니스탄은 20일 태권도에서 올림픽 출전 72년 만에 처음으로 메달을 신고했다. 로훌라 니크파이는 남자 58kg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겼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인 아프가니스탄은 1964년 도쿄 대회 때 레슬링에서 거둔 5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올림픽 메달 순위표의 끄트머리를 보면 이름도 낯선 아프리카 국가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과 예선 같은 조에 묶이면서 비로소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토고의 뱅자맹 보크페티는 카약 남자 슬랄롬 1인승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래 토고의 첫 메달이다. 토고 출신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보크페티는 일약 토고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인구 120만 명에 불과한 아프리카 동쪽 인도양 연안의 작은 섬나라 모리셔스도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모리셔스 복싱 대표팀 브루노 줄리는 밴텀급에서 4강에 올라 동메달을 확보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모리셔스는 줄리가 남은 경기에서 선전해 메달 색깔이 금빛이나 은빛으로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 정수리만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나머지는 삭발을 한 이색 헤어스타일을 한 줄리는 정부로부터 2만5000유로(약 3800만 원)의 포상금을 약속받았다.

가난과 질병의 대명사인 아프리카 국가의 올림픽 약진은 해외 원조와 조기 유학의 결과물이다. 아프리카의 스포츠 유망주들이 성공을 꿈꾸며 장학금과 과학적인 훈련 과정이 보장되는 선진국의 문을 조기에 두드린 결과였다.

3개 종목에 걸쳐 5명의 선수로 이뤄진 미니 대표팀을 파견한 파나마는 올림픽 출전 80년 만에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인구 349만 명에 불과한 파나마 국기를 달고 필드에 나선 어빙 살라디노는 육상 남자 멀리뛰기에서 8.34m로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파나마는 1948년 런던 대회 육상 100m와 200m에서 동메달을 딴 뒤 60년 동안 노 메달에 그친 한을 풀었다. 마르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시티에 신축하고 있는 스포츠 콤플렉스를 ‘살라디노’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바레인은 모로코에서 귀화한 라시드 람지를 앞세워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황금빛으로 채색했다. 람지는 육상 남자 1500m에서 맨 먼저 골인해 제2의 조국에 영광을 바쳤다.

몽골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은 유도 남자 100kg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때 대제국으로 세계를 호령하다 인구 250만 명의 작은 나라로 전락한 몽골은 전통 씨름을 하다 2000년 유도에 입문한 나이단을 앞세워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은 라술 보키예프가 유도 남자 73kg급에서 동메달을 따며 올림픽 첫 메달을 등록했다.

인구가 11억 명에 이르지만 스포츠에서는 약체였던 인도는 아브히나브 빈드라가 사격 남자 공기소총 10m에서 첫 개인전 금메달을 따면서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값진 메달의 사연을 부러워하며 그저 올림픽 출전에만 의의를 둔 국가도 많다. 20일 현재 204개 출전국 가운데 시상대에 선수가 올라간 국가는 77개국이며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국가는 47개국에 불과하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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