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化 경계… 특별 관리를
2008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 중국의 거의 모든 TV에서는 ‘황색 탄환’ 류샹이 출연한 광고 수십 개가 연일 이어졌다. 거리에서도 그의 얼굴이 들어간 광고물과 마주치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런 국민 영웅이 육상 남자 110m 허들 예선도 뛰지 못하고 기권했으니 중국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만하다.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류샹의 기권에 대해 여러 원인이 나오고 있지만 그중에서 너무 많은 광고와 인터뷰 등에 출연하느라 훈련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스포츠심리학에 ‘정보처리이론’이라는 게 있다. 컴퓨터의 정보처리 과정에 비유한 이론으로 경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자극을 효과적으로 분석해 처리할 때 실력이 극대화된다는 얘기다. 축구를 예로 들면 공격수가 자신의 위치, 그리고 골키퍼와 상대 수비,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 등 여러 자극을 받아들여 슛을 해야 할지 패스를 할지를 빨리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보통 정보(자극)의 수를 가능한 한 줄여야 판단이 빠르고 정확해져 ‘킬러 본능’도 극대화된다. 그게 곧 집중력이다.
선수들에겐 경기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 정보처리이론은 중요하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수영의 ‘마린 보이’ 박태환(단국대)과 배드민턴의 ‘살인 미소’ 이용대(삼성전기) 등에겐 더없이 중요하다.
이런 스포츠 스타들에겐 그동안에 없던 스포트라이트란 자극이 하나 더 생기게 된다.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더해 CF 등 광고, 그리고 수많은 매체의 인터뷰 요청까지. 그동안 훈련에만 집중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진다. 수년간 흘린 땀의 결과로 얻어진 인기인 만큼 누려야 할 자격이 있고 인기의 결과로 얻어지는 경제적인 풍요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우리 선수들이 이런 환경에 익숙지 않아 엄청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스포츠 문화는 선수들을 ‘운동하는 기계’로 만들기 때문에 바뀐 상황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과거 스타덤에 오른 선수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사례가 많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뉴욕타임스는 12개 종목의 미국 올림픽 메달리스트 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 40%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포스트 올림픽 증후군’을 겪었다고 전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는 “스타플레이어는 예전과 같이 훈련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 우리 뇌는 새로운 자극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주위에서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선수 생명이 끝나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족이나 종목 관계자들이 당분간 선수들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스포츠 스타를 ‘연예인’ 취급하는 한국의 방송문화에 젖어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태환은 이제 19세, 이용대는 20세다. 4년 뒤 다시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나이다. ‘제2의 류샹’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멋진 모습을 보일 때 갈채를 받는 법이다. 이 진리를 선수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