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승자에겐 승리의 기쁨을, 패자에겐 아쉬움의 눈물을 남긴다. 땀 흘린 노력의 대가는 고스란히 성적으로 이어지고 그게 스포츠가 주는 매력. 그러나 성적이 모든 걸 말해 주는 게 아닌 것도 스포츠다. 때에 따라서는 ‘아름다운 꼴찌'에게 더 큰 박수가 터지기도 하고, 좌절을 딛고 일어선 패자에게 사람들은 더 큰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더구나 올림픽은 4년이라는 짧지않은 시간마다 한번씩 열리는 ‘지구촌의 축제.’ 그 축제에 주인공이 되기 위해 땀을 흘리다 예상치 못한 부상에 발목이 잡힌 패자에게 올림픽은 ‘눈물의 바다’가 되기도 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쓰디 쓴 눈물을 흘렸지만 ‘승자 못지 않은 감동’을 연출한 한국 선수들을 모아본다.
○ 쓰러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았던 이배영
그가 쓰러져 아쉬운 탄식을 쏟아내며 얼굴을 파묻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땅을 쳤다. 역도의 이배영.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는 베이징이 ‘약속의 땅’이 될 것으로 믿었다. 69kg급에 출전한 그는 인상에서 155kg을 들어올리며 한국신기록을 세운뒤 용상 1차시기에서 184kg에 도전하다 갑자기 왼쪽 장딴지 근육경련이 생겼다. 바늘을 꽂고 피를 토하면서 2차 시도에 나섰지만 다시 실패. 3차에서는 저크 동작까지 성공했지만 균형이 흐트러진 몸에서 힘이 나올 리 없었다. 바벨과 함께 나뒹군 그는 결국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원통함을 표현했다. 그가 바벨을 놓지 않고 쓰러졌던 모습을 담아 중국 CCTV는 이배영을 올림픽영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 죽음을 각오했던 백종섭
복싱 대표인 백종섭은 병상에 누워있는 네 살짜리 딸을 위해 샌드백을 치고 또 쳤다. 그의 주먹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그 역시 부상 덫에 뜻을 접었다. 16강전에서 우승후보인 태국 피차이 사요타를 따돌리고 8강전을 기다리던 이튿날. 그는 기관지 파열 진단을 받았다. “링 위에서 죽겠다”는 강력한 출전의지는 그러나 주변의 만류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게 정답이었다. 대표팀 천인호 감독은 링 위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는 기권이었다. 다음 대회를 기약하기에 앞서 우선 군대를 가야하는 그다. 휴대폰 메인화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보며 링 위에서 그토록 매서웠던 백종섭의 눈은 붉게 충혈될 수밖에 없었다.
○ 스무살 청년 왕기춘의 좌절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훈련 파트너에서 일약 태극마크를 달며 화제 중심에 서기도 했던 유도 73kg급 왕기춘. 그는 왼쪽 갈비뼈 부상을 안고 결승까지 올랐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13초만에 매트에 드러눕고 말았다. 발목잡아 메치기 한판 패. ‘눈물의 은메달리스트’로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그는 이제 겨우 스무살. 스무살 청년의 꿈은 일시적으로 접혔지만 그에게는 앞으로 더 많은 날이 남아 있다. 오늘의 좌절이 내일의 더 큰 열매가 되기를 많은 사람은 기도하고 있다.
○ 혼자가 아니라 더 슬펐던 이경원
배드민턴 여자복식 결승 1세트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언니’ 이경원은 응급 처치 후 절뚝이며 다시 게임에 나섰지만 눈에 띄게 둔해진 몸놀림으로 상대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목 부상이 금메달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혼자라면 마음이 되레 가벼웠을지도 모른다. 함께 땀을 흘린 동료이자 동생인 이효정을 생각하면 괜히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효정이 이용대와 함께 혼합복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했을 때, 이효정의 금메달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한 건 다름 아닌 이경원이었다.
김도헌 기자 dohoe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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