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이겨낸 투혼의 챔프들
‘스포트라이트도 함성도 없습니다.’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을 주제로 한 TV광고에 나오는 멘트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에는 많은 비인기 종목이 참가한다. 일명 ‘메달 가능성 종목’이라 불리는 종목들은 이때 많은 관심을 받는다.
같은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아무런 시선도 관심도 없는 종목들도 있다. 열악한 시설에서 수년간 땀을 쏟은 이들의 목표는 금메달보다 값진 예선 통과다. 높은 세계의 벽과 부닥쳐 최선을 다한 이들은 가능성을 보았기에 금메달보다 더 빛날 수 있는 이유다.
한국 육상 기대주 이정준(24·안양시청)은 18일 남자 110m 허들에서 한국 트랙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예선 1회전(13초65)을 통과했다.
이정준은 2회전에서 13초55를 뛰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종전 한국기록(13초56)을 100분의 1초 앞당기는 성과를 거뒀다. 8명 중 6등으로 들어온 이정준은 1위 다이론 로블레스(22·쿠바)의 13초19에는 크게 뒤졌다.
전체 18위로 아쉽게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이정준은 “처음 뛰어본 올림픽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기술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많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여자 카누 25년 역사상 올림픽에 처음으로 자력 출전한 이순자(30·전북체육회)는 19일 열린 여자 카누 1인승(K-1) 500m 3조 예선에서 1분58초140을 기록해 같은 조 8명 중 꼴찌로 예선 탈락했다.
이순자는 경기에 나서기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했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를 맞아주는 서포터는 물론 현지적응과 행정적인 부분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경기장 출입이 가능한 AD카드도 배정받지 못해 발을 굴러야 했다.
훈련 과정도 힘겨웠다. 그가 탈 배는 비용문제로 가져오지 못해 현지에서 급하게 공수했다. 지난해 영입한 헝가리 코치도 통역이 없어 세밀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해 홀로 훈련을 해야만 했다.
한국 승마 선수로 첫 올림픽 자력진출에 성공한 마장마술의 최준상(30·삼성전자승마단)은 15일 마장마술 개인 경기에서 출전 선수 47명 중 46위를 기록했다. 한 선수가 중도에 경기를 포기했기 때문에 출전 선수들 중에서는 최하위인 셈이다.
그는 아시아경기 2회 연속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차지한 아시아 정상급 선수였다. 이번 올림픽 진출을 위해 11개월간 해외에서 훈련하며 지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최준상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부끄러운 꼴등은 아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꼭 출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유일의 다이빙 대표 손성철(21·한국체대)은 18일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예선에서 6라운드 총점 353.35점을 받아 29명중 29위를 기록했다. 515.50점을 받은 1위 허충(중국)과는 무려 162.15점 차로 18명이 올라가는 준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2월 다이빙 월드컵에서 힘겹게 올림픽 티켓을 따낸 손성철은 이후 6개월 동안 태릉선수촌 수영장에 다이빙대가 없어 청주에서 홀로 떨어져 해야 했다. 경기장에서 그를 응원하는 사람은 코치 단 한 명뿐이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