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든 오빠든 거침없이 하이킥

  • 입력 2008년 8월 22일 08시 17분


임수정(22·경희대)은 딸 셋인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53세인 아버지 임경환씨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어머니 장월숙(50)씨는 수영·탁구 등 못하는 운동이 없다. 언니도 태권도 3단, 동생은 검도 1단. 말그대로 스포츠 가족이다.

예측불허의 엇박자 발차기처럼 어릴 때도 엉뚱한 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모임에 간 어머니는 딸의 얼굴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시간 임수정은 “어머니를 모셔오겠다”며 교문 밖을 나서고 있었다. 선생님은 “워낙 또랑또랑하고 용감한 아이라 길 잃고 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잠시 뒤 임수정은 두 눈을 반짝이며 어머니 품에 안겼다.

연년생인 언니와 4살 터울의 동생. 임수정은 자연스레 샘이 많았고, 눈치가 빨랐다.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면 떼를 써서라도 피아노를 쳐야 했다. 속셈학원에 간다면 “나도 가겠다”며 가방을 멨다. 태권도도 그렇게 시작했다.

도복을 입자 샘은 승부근성으로 바뀌었다. 언니들이든 오빠들이든 거침없이 하이 킥. 소풍날이면 “엄마는 나와 함께 가야 한다”며 징징대던 딸은 “난 괜찮으니 언니를 챙겨주라”며 의젓해졌다. 이제 이겨야 할 대상은 언니가 아니라 매트 위 상대였다. 호기심 많고, 엉뚱한 면은 창의적인 발차기로 나타났다. 중학교 1학년. 코치가 “저런 선수 한 번 키워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자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선수가 됐다.

2001전국남녀우수선수권. 중3이던 임수정은 혜성처럼 나타나 고등부부터 일반부까지 무림의 고수들을 잇달아 제압했다. 특유의 대범함과 승부근성 덕분에 언니들을 만나도 주눅들지 않았다. 고1이던 2002년에는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거머쥐며 아시아까지 평정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 슬럼프가 찾아왔다. 주니어대표, 유니버시아드대표를 지냈지만 국가대표와는 줄곧 인연이 없었다. 2007세계대학선수권대표로 선발된 임수정은 5년 만에 태릉선수촌을 밟았다. 임수정은 “1주일 남짓한 그 시간이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어느덧 패배에 면역이 생긴 자신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10cm이상의 신장 차도, 5살 이상의 나이 차도 두려울 것이 없던 5년 전의 임수정과 재회했다.

스포츠심리학을 담당하는 체육과학연구원(KISS) 김용승 박사는 “태권도대표들의 가장 큰 적은 ‘무조건 금’이라는 부담”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담결과 임수정은 태권도대표 가운데 가장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선수였다. 김 박사는 “저렇게 뱃심 좋은 선수는 처음”이라고 했다. 임수정은 “이기고 싶고, 내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를 즐겼다”고 했다.이기는 것이 즐거워 매트에 섰던 초심 그대로, 임수정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베이징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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