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골 소년, 10년만에 세계로 날다

  • 입력 2008년 8월 22일 08시 19분


손태진 왜소했던 초등시절 도복에 꽂혀 입문

88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난 ‘올림픽둥이’ 손태진(20)은 어릴 땐 무척 약골이었다. 부모는 2남 중 막내인 태진이 왜소한 체구 때문에 어디 가서 맞지는 않을까 걱정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태진은 태권도에 화살이 꽂혔다. 도복 입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대신 축구를 포기했다. 중학교 때까지 럭비 선수였던 아버지 손재용(48)씨도 적극 권했다. 그 후 1년, 경산시 태권도 대회에 나가 보란 듯이 우승했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전국 대회 결승까지 올랐다. 과묵하고 조용한 성격에 강한 승부욕까지, 운동선수로서는 제격이었다. 이후는 두말할 필요 없이 승승장구.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학창시절을 화려하게 보낸 그에게 잇따라 시련이 닥쳤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쓴맛을 봤다. 내심 우승까지 노렸지만 1회전에서 탈락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실업팀과 대학의 이중 등록 문제로 홍역을 앓기도 했다. 실업팀 삼성 에스원 입단과 함께 단국대에 입학했던 그가 대학 소속으로 유니버시아드 대표선발전에 출전한 것이 화근이었다. 패한 상대방에서 ‘학교와 실업팀에 이중 등록할 수 없다’는 대한체육회 선수 등록 규정을 위반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말썽이 커졌다. 매일 악몽을 꿨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태권도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탓에 태권도를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인간사 새옹지마, 나쁜 일만 계속 있으란 법은 없었다.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9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올림픽 세계예선대회. 16강에서 팔꿈치에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응급조치만 한 채 경기에 나서 이겼고, 최대 고비였던 8강전 상대 마크 로페스(미국)마저 꺾었다. 투혼은 계속됐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다. 기어코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그는 ‘맨체스터의 영웅’으로 불렸다.

올림픽티켓을 따왔지만, 진짜 고비는 국가대표 선발전이었다. 3월부터 세 차례 열린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서 4명의 동점자가 나왔고, 재경기까지 가는 접전이 벌어졌다. 약방의 감초처럼 판정문제가 불거졌다. 한동안 태권도계는 시끄러웠다. 서로에게 상처를 안긴 가운데 태진은 마지막으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 많은 일을 겪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련과 번민, 고통은 모두가 올림픽을 위한 보약이었다.

당당히 선 베이징 올림픽 무대. 자신감이 넘쳤다. 부모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진 경기여서 더욱 힘이 났다. 학창 시절 처럼 예선부터 승승장구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지 10년, 태진은 약관의 나이에 세계를 제패했다.

베이징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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