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로 맞선 8회말 1사 1루. 이승엽(요미우리)이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는 일본프로야구에서 올해 27세이브(3승 3패)를 거둔 철벽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이승엽은 전 타석까지 타율 0.150(25타수 4안타)에 2타점만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날도 삼진 2개와 2루 앞 병살타로 부진했다.
2스트라이크 1볼. 이승엽은 이와세의 몸쪽 낮은 공을 힘 있게 끌어당겼다. 타구는 높이 떠올랐다. 이승엽은 타구를 한참 동안 바라봤고 일본 우익수 이나바 아쓰노리(니혼햄)가 오른쪽 담장 끝까지 물러서더니 고개를 숙였다. 홈런이었다. 일본 대표팀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예선에 이어 준결승에서도 격침
한국은 1회와 3회 일본에 1점씩을 내주며 0-2로 뒤졌다. 일본 선발 스기우치 도시야(소프트뱅크)는 3회까지 한국 타선에 볼넷 2개만을 내줬을 뿐 모두 범타 처리했다.
그러나 한국은 0-2로 뒤진 4회말 반격을 시작했다. 이용규(KIA)가 왼쪽 안타를 친 뒤 일본 좌익수 사토 다카히코(세이부)가 공을 뒤로 흘린 사이 2루까지 진루했다. 이어 김현수의 좌중간 짧은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에서 이승엽의 2루 땅볼 때 3루 주자 이용규가 홈을 밟아 1점을 만회했다.
승부처는 1-2로 뒤진 7회였다. 1사 후 이대호가 볼넷으로 걸어나가자 김경문(두산) 감독은 정근우(SK)를 대주자로 내세웠다. 고영민은 일본 네 번째 투수 후지카와 규지(한신)의 시속 149km 직구를 받아치며 왼쪽 안타를 날려 1사 1, 2루.
김 감독은 2사 후 박진만 타석에서 대타 이진영(SK)을 내세웠다. 이진영은 오른쪽 안타를 터뜨렸고 정근우는 총알같이 3루를 돌아 홈으로 돌진했다. 간발의 차로 세이프. 이대호가 그대로 있었다면 아웃 타이밍이었다. 김 감독의 대주자, 대타 작전이 2-2 동점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일본은 흔들렸다. 8회말 이승엽에게 2점 홈런을 포함해 4안타 4실점하며 무너졌다. 김광현에 이어 9회 마운드를 물려받은 윤석민(KIA)은 3타자를 범타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 감(感)의 야구, 스몰볼을 꺾다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파죽의 8연승으로 결승에 오른 것은 김 감독의 뚝심 야구의 승리다.
김 감독은 신인에게 기회를 준다.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한 김현수(타율 0.435) 이종욱(0.323) 고영민(0.250·1홈런)도 무명 신인 출신이다.
김 감독은 치고 달리는 야구를 선호한다. 거기에 자신의 느낌을 가미한 ‘감의 야구’를 덧입혔다.
이날 일본전에서도 김 감독은 자신의 감을 밀어붙였다.
일본 선발 스기우치는 왼손잡이. 김 감독은 이를 예상하고도 선발 라인업 1번 이종욱부터 이용규 김현수 이승엽까지 왼손타자로 배치했다. 이용규와 김현수는 4타수 2안타를 쳤고 이승엽은 결승 2점 홈런을 날렸다. 감의 야구가 들어맞은 셈이다.
반면 일본 대표팀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소심한 스몰볼로 무너졌다. 1회와 3회 주자가 나가면 번트를 대는 작전으로 2점을 냈지만 그 이후 타선은 침묵했다.
투수 운용에서도 양 팀 감독은 달랐다. 김 감독은 스무 살의 프로 2년차 김광현을 믿었다. 16일 일본과 예선전에서 5와 3분의 1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던 김광현은 믿음에 보답했다. 8이닝 동안 삼진 5개를 포함해 6안타 2볼넷 2실점(1자책점)으로 일본 타선을 막았다. 호시노 감독은 조급했다. 투수를 6명이나 쏟아 부었다. 가와카미 겐신(주니치) 나루세 요시히사(롯데) 후지카와 규지(한신)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마운드에 올랐지만 1, 2이닝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감독의 믿음이 부족했던 탓이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베이징=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영상 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영상 취재 : 베이징=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영상 취재 : 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