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중국인들은 8강 경기를 모두 마친 뒤 뜬금없이 흘러나온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분노했다.
8강 세 번째 경기에 출전했던 첸 종(중국)이 1-0으로 승리, 준결승전에 진출한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정작 4강 진출자는 상대선수였던 사라 스티븐슨(영국)로 결정됐기 때문.
경기 종료 직전 스티븐슨은 내려찍기로 첸 종의 머리를 가격했지만, 점수로 인정받지 못하고 패하자, 심판 판정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스티븐슨은 재심을 요구했고, 이를 비디오 판독한 심판진은 스티븐슨의 손을 들어줬다.
첸 종의 4강 진출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중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에 경기장을 찾은 수 많은 중국 관중들은 자국 선수를 떨어뜨린 심판진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특히 스티븐슨이 준결승전에 출전하자 흥분한 중국 관중들은 멕시코 선수에게 일방적인 응원을 보내며 판정에 승복하지 않은 스티븐슨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번 스티븐슨의 제심 승소 판결은 국가 외교의 힘과 관계가 깊다.
10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 태권도는 세계 정상급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스포츠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국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는 열악한 아시아 스포츠외교의 단면을 보여준 셈.
억울한 상황을 맞은 아시아 국가는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지난 21일 ‘우생순’의 감동을 재현하려던 한국 핸드볼대표팀도 일격을 당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네트를 가른 노르웨이의 슛이 득점으로 인정돼 아쉽게 1점차로 패했다. 깨끗한 패배는 인정하더라도, 당시 억욱한 상황만은 밝히기 위해 제소를 신청했던 한국은 결국 본전도 찾지 못하고 기각된 내용을 수긍해야 했다.
또한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는 양태영이 어이없는 심판 오심으로 인해 금메달을 빼앗겨 한국의 스포츠외교력이 지적받은 바 있다.
이런 불합리한 결과를 얻은 쪽이 한국이 아니라 스포츠외교 강국 미국, 영국 등 유럽국가였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한국은 아테네에 이어 베이징에서도 얻은 교훈을 발판 삼아 더 강한 스포츠외교력을 키우는데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베이징=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