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야구에서 감독은 성역으로 통한다. 이 불문율이 베이징올림픽에서 깨졌다. 일본 언론은 ‘참패’, ‘굴욕’이란 극언을 써가며 호시노 센이치 감독을 직격 비판했다. 베스트 멤버, 총력 지원이 무색하게 동메달도 못 땄다. 한국에 두 차례 지는 등 5패나 당했다.
‘대등하지만 항상 결정적 순간엔 일본이 한국을 이겨왔다’는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한일야구의 역사적 터닝 포인트로 각인된 베이징올림픽을 일본은 어떻게 결산할까. 또 일본의 반격은 어떻게 이뤄질지 김일융 <스포츠동아> 일본 통신원에게 들어봤다.
○일본이 진 게 아니라 한국이 이긴 것
일본의 실패라기보다는 우선 언급할 점은 ‘한국이 잘 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쿠바를 이긴 그 기세가 4강 일본전까지 이어졌다. 그 기세를 못 막은 것이 패인이다. 일본은 지금 충격에 빠져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이 강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패인을 일본 내부로 돌리면 세가지다. 첫째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둘째 호시노 감독은 타선의 연결에 치중했지만 전혀 안 됐고, 득점력 저하로 이어졌다. 셋째 호시노의 투수 기용마저 무리가 있었다. 일본은 누가 나와도 3-4이닝만 던지는 게 목적이었다. 반면 한국의 왼손피처(김광현, 류현진을 지칭)는 6-7회 이상을 끌고 갔다.
호시노 감독은 올림픽에서 불펜진으로 승부를 보려 의도했다. 이로 인해 에이스 다르빗슈의 기용 폭이 줄어들었다. 아마 다르빗슈는 베이징에서 몸에 트러블이 발생한 듯하다. 호시노는 첫 경기 쿠바전만 선발로 쓰고 결과가 안 좋자 다르빗슈의 비중을 축소시켰다. 결과론이지만 가장 중요한 투수인 다르빗슈를 한국전에 쓰지 않은 점은 아쉽다.
한국의 기세를 언급했는데 최대 분기점은 예선전 한일전이었다. 일본이 이와세를 구원 등판시킨 타이밍에서 한국은 왼손타자(김현수)를 대타로 내서 결승타를 뽑아냈다. 상식을 뒤엎은 한국의 작전이었고 양국의 분위기를 뒤바꾼 순간이었다. 실패한 이와세를 준결승 한국전에 또 올린 것은 아쉽다. 교체 타이밍도 나빴다.
○일본, WBC도 고민스럽다
요미우리 와타나베 명예회장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에 대해 “호시노 외엔 대안이 없다”라고 했다. 복수를 위해 호시노 본인이 내심 맡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 12구단 감독의 동정이나 역학관계를 고려해야 하기에 단정할 수 없다.
일본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카드는 2006년 제1회 WBC 우승 감독인 왕정치(오사다하루) 소프트뱅크 감독이지만 몸이 안 좋아서 고사할 것이다.
노무라 라쿠텐 감독 얘기도 나오지만 쉽지 않다. 특히 WBC 감독은 이치로, 마쓰자카, 마쓰이 등 메이저리거를 불러올 수 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어야 되는데 마땅치 않다.
현 시점에선 빅리거의 WBC 참가가 불확실하다. 3월에 대회가 열리는 만큼 시즌을 앞두고 부담스러워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이들에게 참가를 요청할 수 있는 감독이 누구냐가 중요하다. 또 이제 ‘일본야구가 한국에 언제든 질 수 있다’는 현실을 목격했기에 리스크가 높아져 선뜻 감독을 맡겠다고 나서기 어렵게 됐다. 9월부터 논의될 예정이라는데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이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면 후보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이승엽 보복설? 웃기는 소리
이승엽의 홈런으로 ‘일본이 이승엽을 벼른다’란 소문이 한국서 도는 모양인데 말도 안 된다. 전혀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물론 이승엽의 일격은 일본야구에 쇼크였다. ‘저런 상황에서 홈런을 치다니’란 느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미움이 아니라 경탄이다. 이승엽은 당당히 가슴을 펴고 일본에 들어오면 된다. 오히려 요미우리 입장에서 이승엽의 홈런포는 바라던 바였다.
이승엽의 회복세를 확인했기에 1군 승격도 바로 이뤄진 것이다. 마침 요미우리는 그레이싱어와 번사이드가 전반기에 비해 페이스가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27일 선발 번사이드를 바로 2군에 내려 10일의 시간을 번 뒤, 이승엽을 올리는 방안을 택한 것이다.
김일융 스포츠동아 일본 통신원
정리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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