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얘기가 아니다. 사상 첫 4체급 석권을 달성한 태권도대표팀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도 아쉬운 속내를 털어놓았다. 더 멋지게 이기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첫 금메달을 안긴 임수정(22·경희대)은 연습기간 화려한 발차기들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통통 튀는 모습을 보고 한 중국기자는 “나비 같다”고 할 정도. 과감한 공격은 임수정의 전매특허다.
몸놀림이 많아 빈틈도 많지만 임수정은 그런 단점을 감수한다. “확실히 이겨야 더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천하의 임수정도 “조심스럽게 경기 운영을 하게 되더라”고 털어놓았다.
황경선(22·한체대)은 얼굴공격을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았다. 황경선은 득점이 많기 보다는 실점이 적은 선수. 노련한 경기운영을 자랑하지만 재미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황경선은 그 모든 것을 날릴 각오였다.
하지만 8강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다리를 뻗기조차 힘들었다. 황경선은 “부상 때문에 4강·결승에서 화끈한 승부를 펼치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차동민(22·한체대)은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그리스)와의 결승전 4-4 상황에서 경기종료 18초를 남기고 오른발 공격으로 득점했다. 하지만 니콜라이디스는 “마지막 1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겸손한 차동민은 “상대방어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오른발이 들어갔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느린 화면으로 보면 확실한 유효타였다. 오히려 1회전에서 차동민이 허용한 2점이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차동민은 떳떳하지 못한 니콜라이디스를 탓하기 보다는 “상대를 압도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책임을 물었다.
승리하고도 ‘배고파 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 말로 종주국의 자존심이고, 출전 전 체급을 석권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이들에게 걸맞지 않다. 대표팀 김봉근(경희대감독)코치는 “호주나 이란은 선수 한 명에게 코치 4명이 붙고, 중국은 코치가 11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코치는 고작 3명이었다. 경쟁국들은 메디컬, 기술, 체력, 영상분석 등 분야별로 코치들이 나눠져 있다. 반면 한국은 기술을 담당해야 할 코치들이 직접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유럽대회의 관중석을 헤맸다.
대표팀 김세혁(삼성에스원감독) 감독은 “태권도는 금메달을 따면 본전이고 못 따면 역적으로 몰린다”면서 “이런 식으로 (시스템을) 내버려두면 런던올림픽 때는 금메달 1개도 못 딸 수 있다”고 했다. 화려한 안면 발차기를 집중 연마하는 한국대표팀이 있는 한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이유로 올림픽과 결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시스템을 재정비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올림픽 4체급 석권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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