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와 아시안투어에서 맹활약을 펼쳐오며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강욱순은 2003년 12월 제왕의 자리를 박차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3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문을 두드렸다. 6라운드로 치러진 퀄리파잉스쿨(Q-스쿨)의 최종 결과는 1타차 탈락. 아쉬움이 남았는지 이듬해 2부 투어인 네이션와이드투어에 진출해 다시 한번 PGA 진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번번이 컷오프 당하면서 좌절을 경험했다. 1년간의 외유를 끝내고 2005년 국내로 복귀했지만, 이번에는 슬럼프가 발목을 잡았다. 고질적인 왼 손목 부상이 악화됐고, 입스(Yips)까지 생기면서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최고 자리에 올랐던 강욱순은 순식간에 미끄럼타면서 깊은 슬럼프에 빠졌고,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결국엔 골프를 그만 둘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도 없었다. 9년간 후원해온 스폰서와 주변 사람들의 격려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잡아줬다.
부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생활의 변화도 시도했다. 명상에 푹 빠졌고, 차를 즐겨 마셨다. 등산으로 체력 단련에도 신경을 썼다.
5년 전 시작한 명상은 최고 단계라는 무아지경까지 경험했다. 지금은 부인과 함께 명상을 즐기고 있다. 설악산 대청봉을 보름동안 매일 오르고 내린 적도 있다. 그 때문에 아킬레스건을 다치는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후배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체력 훈련에 소홀하지 않았다. 지인의 권유로 마시기 시작한 중국 보이차는 하루에 2리터 이상씩 매일 마시고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잔병에 좋다는 게 강욱순의 설명이다.
우승에 대한 계시였을까. 어젯밤에는 취침 중에 갑자기 왼 손목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왼 손목이 아파서 스윙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편하게 스윙할 수 있었다고.
5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8월 31일은 강욱순에게 특별한 날이기도 하다.
19년 전인 1989년 8월 31일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가 됐다.
후배 사랑에도 앞장섰다. 지난 13일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한 후배 임형수 프로를 위해 1000만원의 성금을 내놨다. 강욱순은 1999년과 2002년 KPGA투어 상금왕을 차지했고, 1996년과 1998년에는 아시안투어 상금왕을 거머쥐었다. 5년 만에 우승의 기쁨을 맛본 강욱순이 재기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남은 시즌이 기대된다.
제주=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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