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기적’ 이승엽 있음에…하라 감독 5번 중용

  • 입력 2008년 9월 2일 08시 17분


8월 31일 고시엔구장. 1-1 동점으로 맞서던 8회. 한신 투수는 좌완 제프 윌리엄스. 지난해 요미우리를 상대로 방어율 0.64(11경기)를 기록한 천적이었다.

3번 오가사와라-4번 라미레스의 연속안타로 무사 1·2루. 이어 등장한 5번 이승엽.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여기서 요미우리 하라 감독은 런앤히트 작전을 걸었다. 주자는 뛰었고, 볼은 바깥쪽 낮은 직구였다. 이승엽은 이 볼을 잡아당겨 2루 땅볼로 만들어냈다. 주자는 2·3루까지 진루했고, 연속 볼넷으로 결승점을 뽑았다. 이어 대타 오미치의 싹쓸이 2루타가 터지며 요미우리는 승리를 굳혔다.

6-1 승리 확정 후 하라가 꼽은 주역은 오미치가 아니라 이승엽이었다. “풀 카운트에서 이승엽이 팀 배팅을 해줬다. 오미치의 한방보다 더 평가하고 싶다.” 이날의 승리는 단순한 1승을 뛰어넘어 요미우리의 얽혔던 우승 퍼즐이 완성된 경기이기도 했다. 개막 전 ‘당연히 우승’이라는 예찬을 듣던 그 위용을 이제야 되찾은 것이다. ‘돌아온 이승엽’은 그 화룡점정이었다.

○하라, 이승엽을 진짜로 믿기 시작했다

요미우리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이승엽이 팀에 돌아온 직후인 8월 28일 1군 복귀를 지시했다.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일본전과 결승 쿠바전 홈런포를 목격하고 부활을 확신한 셈이다. 27일 번사이드가 선발승을 따냈음에도 2군으로 내린 사실도 그 기대감을 반증한다.

하라는 이승엽을 올린 뒤 “10일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번사이드를 다시 올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당위적 레토릭으로 받아들여야 타당하다. 오히려 하라는 좌투수가 선발 투입돼도 이승엽을 기용했다. 올림픽 전과 달라진 대우다. 두 경기만인 29일 한신전에서 안타가 나오자 6번에서 바로 5번으로 올렸다. 이승엽은 29-31일 3연전에서 7안타를 몰아쳐 화답했다.

○이승엽, 12년만의 ‘메이크 드라마’ 도전

31일 한신전 승리로 요미우리는 센트럴리그 1위 한신에 6경기 차로 따라붙었다. 4월 말 이래 한신과 격차를 이렇게 좁힌 것은 처음이다. 클라이맥스시리즈 2위 진출은 사실상 확보됐고, 관건은 우승 매직넘버 25를 남긴 한신과의 막판 스퍼트다. 하라 감독은 “5경기 차까지 좁히면 해볼 만하다”고 밝힌 바 있다.

요미우리는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감독 시절인 1996년 대역전 리그 우승을 일궈낸 전력이 있다. 그때 나가시마는 ‘메이크 드라마’를 선언했고, 실현했다. 영어 문법에도 맞지 않는 이 문구는 그해 일본의 유행어 대상으로 선정됐다.

요미우리는 2일부터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히로시마와 경기를 치르고, 야쿠르트-주니치-야쿠르트-요코하마전이 이어진다. 그리고 9월 19일 도쿄돔에서 한신과 숙명의 3연전을 펼친다. 이승엽과 요미우리의 진정한 시즌은 9월부터 시작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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