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감독은 지난해 한 프로 초년병 왼손투수를 혹독하게 다뤘다. 마운드에서 조금만 흔들려도 다른 투수로 교체했다.
그러면서도 제자를 항상 곁에 두고 연습을 시켰다. ‘공을 던질 때 팔을 최대한 위로 세워라’ ‘하체 이동에 신경을 써라’라며 꼼꼼히 가르쳤다.
그 초년병은 이듬해 팀의 기둥으로 거듭났다. 호쾌한 투구 폼에서 나오는 최고 시속 150km의 직구와 낙차 큰 커브로 타자를 압도했다.
SK 김성근(66·사진) 감독과 에이스 김광현(20) 얘기다.
김광현은 스승의 은혜를 승리로 보답했다. 3일 문학에서 열린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7과 3분의 1이닝 동안 삼진 9개를 포함해 4안타 3볼넷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8-0 승리를 이끌었다.
김 감독은 이날 1000승(892패 49무) 감독이 됐다. 김응룡(1476승) 삼성 사장 이후 두 번째 대기록. 김 감독의 1000승은 1984년 4월 7일 OB(현 두산) 감독으로 프로 첫 승을 거둔 지 24년 3개월여 만이다. 태평양(현 히어로즈) 삼성 쌍방울 LG SK 등 6개 팀을 거치며 이룬 결과다.
경기 직후 ‘1000승’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김 감독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야구 팬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지난해 SK에서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한 게 가장 기뻤다. 올해 나머지 27경기도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롯데의 기세가 무서운 만큼 SK가 최소한 80승은 해야 한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김광현은 이날 승리로 올 시즌 13승(4패)째를 거두며 KIA 윤석민과 함께 다승 공동 1위.
선두 SK는 초반부터 7위 히어로즈를 몰아쳤다. SK는 1회말 4안타와 희생타를 묶어 4득점한 뒤 8회말 김재현의 솔로 홈런과 김강민의 3점 홈런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