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꿈 많던 소녀는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오는 걸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있는 듯, 죽은 듯”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나이 서른에 친구가 기분전환을 하자며 사격장에 데리고 갔다. 문애경(40·사진)은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우연히 쏴본 공기소총. 첫 발은 대번에 10점 과녁을 관통했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운동이라면 사고 전이나 후나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사격에는 재능이 있었다. 입문 1년 반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 선발의 기쁨도 잠시. 현실의 벽은 두꺼웠다. 총이며, 실탄, 대회 참가 시 교통비와 숙박비까지 1년이면 1000만 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 소속팀이 없어 일정한 수입도 없었다. 총을 내려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말렸다. 어머니는 딸의 웃음을 찾아 준 사격이 고마웠다.
문애경은 사대에 섰을 때 맥박수가 130까지 올라간다. 일반 사격선수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 평소 맥박수가 일반인에 비해 많다. 병원에서는 “흉곽이 약해서”라는 진단을 내렸다.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 사격선수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하지만 총을 잡는 것이 좋아 모든 신체의 약점을 뚫었다.
8일 베이징사격장. 문애경은 10m 공기권총 여자 결승에서 최종 합계 463.2점을 기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4발 째까지 2위 린하이얀(중국·467.7)를 1.6점차로 앞섰지만 5발 째 6.6점을 쏴 금메달을 아쉽게 놓쳤다. 홈 관중들의 엇나간 애국심은 문애경이 격발을 준비할 때 비신사적인 응원으로 나타났다.
문애경은 “중국 관중들이 고함을 질러 격발 타이밍을 2번 놓쳤다”면서 “하지만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한 탓이기 때문에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시상대에 선 문애경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문애경은 “김해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뒷바라지하는 어머니께 꼭 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애경은 “사격은 내 삶의 이유이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길 힘이 남아 있는 한 총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문제는 경비. 문애경의 소원은 소속팀이 생겨 돈 걱정 없이 총을 잡아 보는 것. “사실 메달을 따도 기쁨은 잠시 뿐이다. 당장 한국에 가면 또 어떻게 연습을 할지 걱정이다. 몸이 불편한 것도 서러운데 사격선수로서 최소한의 대우도 못 받으니 의욕이 떨어진다. 제발 장애인 사격 팀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제발’ 이라는 말에 가슴이 저렸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