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jing 못다 한 이야기]<11>복싱 김정주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다친 왼주먹 쓸때마다 고통

덜 아프게 해달라 기도했죠”

“복싱은 더 많이 때리는 선수가 이기는 거잖아요. 그런데 때릴 때마다 내 주먹이 더 아프니 앞이 캄캄했죠.”

2008 베이징 올림픽 복싱 69kg급에서 왼손 부상에도 불구하고 값진 동메달을 따내는 투혼을 보여준 김정주(27·원주시청·사진)는 오른주먹으로만 싸워야 했던 올림픽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한마디로 절망적이었다”고 했다.

김정주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기도의 힘으로 버텼다. “경기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덜 아프게 해 달라고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김정주는 올림픽 기간에 진통 마취주사를 하루 4대씩 맞아가며 경기에 나섰지만 약효가 뼛속까지는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정주의 왼손은 올림픽에 나가기 전부터 문제가 있었다. 7월 연습 도중 집게손가락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한 것. 이때부터 김정주는 다친 왼손의 빠른 회복을 위해 연습 때도 오른주먹만 썼다.

“솔직히 왼손이 어느 정도 회복됐는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실전에서는 이것저것 가릴 상황도 아니고 죽기 살기로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왼 주먹이 나간 거죠.”

올림픽 32강전에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뻗은 김정주의 왼주먹은 여전히 성하지 않았다. “경기 중에 왼손 끝에서부터 팔을 타고 통증이 쫙 밀려 올라오는데 미치겠더라고요.”

그는 부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따낸 동메달이라 만족한다고 했다.

올림픽 은, 동메달리스트가 대개 다음 런던 올림픽 때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각오를 내놓은 것과는 달리 김정주는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박사학위를 따 후배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한다. 김정주는 상지대에서 체육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김정주는 복싱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는 형편이다. “마음 같아서는 공부만 하고 싶죠. 그렇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학비를 직접 벌어가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소속팀에서는 운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올림픽 후 귀국해 병원에서 부상 부위의 컴퓨터단층촬영을 한 김정주는 가운데 손가락뼈에 금이 가고 새끼손가락 인대가 늘어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왼손에 깁스를 한 채 10월에 열릴 전국체전에 대비해 체력 훈련만 하고 있다.

김정주는 “그동안 고된 훈련도 힘들었지만 아무도 복싱에 관심을 갖지 않는데 선수들만 외톨이처럼 샌드백을 두드리는 게 더 싫었다”며 “침체된 한국 복싱을 위해 국민이 많이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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