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우리가 왜 한화의 고춧가루야”

  • 입력 2008년 9월 11일 09시 57분


한화 김인식 감독이 10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3루측 덕아웃에서 취재진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불쑥 LG 김재박 감독이 나타나 인사를 했다. 시즌 마지막 게임도 아닌데다 김재박 감독이 평소 상대팀 덕아웃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다소 의외였다. 취재진은 물론이고 김인식 감독도 잠시 놀란 표정.

김재박 감독은 “안녕하십니까”하고 첫 마디를 꺼낸 뒤 “어쩌다 저희가 고춧가루부대가 돼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전날 게임에서 LG가 한화에 승리를 거두며 갈길 바쁜 한화의 뒷덜미를 잡은게 마음에 걸렸던 듯. 그러면서 복잡한 틈을 비집고 김인식 감독 옆 자리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짧은 순간, 딱히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한 김인식 감독은 웃으면서 “고춧가루는 무슨…”이라며 옆자리에 앉은 김재박 감독의 등을 다정스레 두드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기나긴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다. 잠시 김재박 감독이 한화 더그 클락의 상태를 물었고, 김인식 감독이 “무릎이 좋지 않다”고 답했을 뿐. 그게 다였다.

엉덩이를 나란히 하고 앉은 시간은 제법 됐지만 둘 사이에 오고간 대화는 거의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났을 때 김재박 감독은 “수고하십시오”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인식 감독도 “어, 수고해”라며 가는 이를 붙잡지 않았다.

두 사람은 ‘침묵의 대화’를 즐기는 듯 했다. 그 침묵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잠실=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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