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100-200m 2관왕 이어 다관왕 시동
11일 저녁 ‘새 둥지(냐오차오)’로 불리는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패럴림픽) 주경기장.
육상 남자 400m에 출전한 홍석만(33·제주장애인체육회)은 여유가 넘쳤다.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할 정도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이미 예선에서 49초13으로 패럴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결선에 올랐다. 세계기록(48초86)을 갖고 있는 그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우승은 그의 몫이었다.
홍석만은 제주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그에게 소아마비가 찾아온 것은 세 살 때. 또래들과 제대로 놀아 보지도 못한 채 뛰기는커녕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됐다.
탁구를 즐기던 그는 고등학교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휠체어 육상을 시작했다. 육상 선배들의 모습이 멋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질주 본능’을 억누를 수 없었다.
“두 발로 달릴 수 없는 제게 휠체어 육상은 기회였어요. 스피드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모험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국가대표 탈락은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크는 기회가 됐다. 충격으로 한동안 육상을 포기했던 그는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코치도 없이 퇴근 후 밤마다 운동장을 200바퀴 가까이 달렸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고 그는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100m, 200m 우승, 400m에서 2위를 하며 한국 최초의 육상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이날 홍석만은 실수하지 않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이 일방적으로 자국의 리후자오를 응원했지만 그는 웬만한 성인 남자 허벅지 같은 팔뚝으로 빠르고 또 힘차게 휠체어 바퀴를 돌렸다. 그리고 47초67이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9일 4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딴 홍석만은 200m, 800m, 1600m 계주 출전을 남겨 놓고 있다.
1998년 일본 오이타에서 열린 휠체어마라톤대회에 출전한 홍석만은 자원봉사자였던 이데 에스코(35) 씨를 만났다. 홍석만은 2004년 2관왕이 된 뒤 청혼을 했다. 이듬해 5월 결혼을 했고 지금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홍석만은 “닷새 후면 생일을 맞는 아들에게 금메달을 선물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두 팔로 가장 빨리 달리는 사나이 홍석만. 그 덕분에 냐오차오에는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