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베이징 올림픽 유도 남자 81kg급에서 은메달을 딴 김재범(23·한국마사회·사진)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한 듯했다. 김재범은 3분 30초 만에 비쇼프에게 유효를 내줬고 종료 벨이 울릴 때까지 만회하지 못했다. 그는 경기 뒤 “체력 한계로 마지막까지 집중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8강전에서 연장 2분 56초 만에 지도승을 거뒀고 준결승에선 연장전까지 꽉 채워 10분 만에 승리했다. 60kg급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5경기 동안 7분 40초를 뛴 데 비해 김재범은 2경기에서만 18분 가까이 혈투를 벌였던 것.
결승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지만 체력 좋기로 유명한 김재범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간이 문제였다.
“베이징에 가기 2주 전쯤 몸이 너무 안 좋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간 치수가 너무 높게 나왔더라고요.”
혹시나 해서 다시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더 안 좋았다. 그전까지 간에 이상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훈련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체급을 바꾼 뒤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도 컸고요.”
김재범은 경기 당일 컨디션이 평소의 20∼30%밖에 안 됐다고 했다. 코칭스태프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합의’하에 아예 몸도 안 풀고 경기를 시작했다.
“(이)원희 형이 그러데요. 제 스타일대로 했던 경기가 하나도 없었다고.” 대표팀 안병근 감독은 “그 상태로 결승까지 올라간 것만도 기적”이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재범은 매사에 늘 긍정적이다. “몸이 그렇게까지 나빠질 줄은 몰랐다”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지더라도 올림픽에 나가야죠. 메달을 못 딸 거라는 생각은 안했습니다. 내일 더 아파도 좋으니까 오늘만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며 훈련했어요.”
그는 귀국해서 여느 금메달리스트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다. 한 TV 프로에 출연한 뒤에는 거침없는 입담을 선보여 ‘리틀 김종국(연예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칭찬이라면 감사하죠. 방송국에서 그런 걸 바라고 출연 요청을 한 것 아닐까요. 긴장 안 하고 촬영장이 놀이터라고 생각하며 즐겼어요.”
후끈 달아올랐던 베이징 올림픽 열기는 가을바람과 함께 식어가고 있다. 반짝 관심이 아쉽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주위의 관심과 상관없이 저는 운동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다만 국민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유도가 더 클 수 있지 않을까요.”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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