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융의 일본, 일본야구] ‘팽’ 당한 호시노, 현장복귀도 없다?

  • 입력 2008년 9월 19일 08시 27분


호시노 센이치의 별명은 ‘열혈남아’다. (대학 졸업 후 요미우리에 입단하기로 약속돼 있었지만 지명을 받지 못하는 배신을 당했다)선수 시절부터 안티거인의 상징적 존재였고, 주니치-한신 감독으로서 그 이미지를 더했다. 승리를 위해 감독 시절 선수 구타도 마다하지 않았다.(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때린 적도 있었다.)

이런 호시노가 베이징올림픽 감독으로 내정된 주요 배경은 ‘대안부재’였다. 나가시마와 왕정치 감독이 건강에 문제가 생기자 그에 필적할 거물급은 호시노 정도였다.

호시노는 대학동급생인 다구치와 야마모토 등을 불러서 코치진을 짰다. 여기에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왕정치를 보좌한 오노가 투수코치로 가세했다. (그러나 올림픽 결과가 참담하게 나타나자 정실인사란 비판에 직면했다.)

일본 매스컴의 호시노 때리기는 ‘프로야구 올스타 선수를 모아놓고 동메달도 못 따고 패하면 어떡하나’란 실망감의 표출이다.

이에 호시노는 ‘이런 분위기라면 2009년 WBC 감독직은 맡지 않는 편이 낫다’고 결심한 듯하다. 이에 따라 차기 WBC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의 협의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결정은 NPB(일본프로야구기구) 회장의 몫이겠지만 감독 선출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제 호시노의 현장 복귀는 어려워 보인다.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도 땄어야 가능성이 남았을 것이다. 주니치는 성적을 내고 있는 오치아이 감독 체제를 유지할 전망이고, 한신 행도 어렵다. 올림픽 전만 해도 요미우리 감독설이 나돌았지만 물 건너갔다.

끝으로 이번 올림픽의 실패가 요미우리 세력의 호시노 견제 탓이란 얘기도 있다던데 설득력이 없다. 요미우리는 호시노의 선수 차출에 전폭 협조했다. 호시노가 뽑지 않았거나 부상이 있어서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을 뿐이다.

스포츠동아 일본통신원

84년부터 3년간 한국 프로야구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일본으로 돌아가 요코하마, 다이에와 야쿠르트를 거친 뒤 92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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