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시아 스타일? vs 김태균 스타일!

  • 입력 2008년 9월 25일 14시 24분


며칠 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메이저리그의 압도적인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는 라이언 하워드가 삼진 부문에서도 1위를 놓고 경쟁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진행자는 홈런왕과 삼진왕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을 더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어딘가 좀..’ 하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정리해봤다.

목에 한국말로 ‘왕자’라는 문신을 새겨 넣었던 걸로 국내에 더 잘 알려진 프린스 필더에 이어 지난해 내셔널리그 홈런 2위에 올랐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라이언 하워드는 어쩌면 사상 최초로 단일시즌 200삼진을 당할 뻔했다. 2000년 이후 프래스턴 윌슨, 호세 에르난데스, 아담 던 등이 도전을 했지만 감독이 알아서 배려해준 덕에, 스스로 스윙을 억누르며 이런 불명예를 피했지만 홈런왕에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간당간당했던 하워드로서는 마냥 소극적인 공격만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즌 중반만 해도 무난히 200개를 넘길 것으로 보였으나 다행히(?) 199개로 시즌을 마친 하워드. 그러나 올 시즌에는 아무리 참는다 해도 아마 무난히 넘기지 않을까 싶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아직까진 통산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장종훈이 340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는 동안 무려 1,354의 삼진을 당해 통산 삼진 랭킹에서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하워드는 2.8타석 당 1삼진을 당했다. ‘홈런왕? = 삼진왕!’ 속설처럼 내려온 야구의 이런 공식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등잔 밑의 그림자일까?

물론 100% 힘만으로 큰 타구를 날릴 수는 없지만 강한 힘을 가진 타자가 더 많은 홈런을 때릴 수 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을 듯하다. 힘 있게 쳐야 힘 있는 타구가 나오는 법이고 그렇다보면 삼진의 개수는 자연스럽게 많아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공을 던진 이후 0.25초 안에 스윙을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야구에서 더군다나 큰 타구를 날리자면 어느 정도 모험수가 있는 예측공격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현대 야구는 이런 관념을 깨뜨리고 있다. 여전히 삼진이 많은 홈런타자들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삼진이 적은 홈런타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장종훈이 가지고 있는 ‘아직까지 통산 홈런 1위’의 기록을 깨뜨리기 일보 직전에 있는 양준혁(통산 339 홈런 보유자)은 865개의 삼진을 당했다. 장종훈이 당한 삼진 수의 64%에 불과하다. 2003년에 단일 시즌 최다 홈런(56)을 기록한 이승엽의 시즌 삼진 수는 89개로 고작 6.7타석 당 1번 당했을 뿐이다.

2006년의 알버트 푸홀스는 엄청난 기록을 세울 뻔했다. 49개의 홈런으로 하워드에 이어 리그 홈런 2위에 오른 그의 시즌 삼진 개수는 딱 50개. 2개만 적었어도 홈런 숫자보다 더 적은 삼진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약물의 의혹이 있지만 어쨌든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갖고 있는 배리 본즈도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 타자로 유명하다.

이러한 홈런 타자들의 스타일 변화는 현대 야구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투수들의 구질이 다양해지고 전력 분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단점이 많은 타자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큰 스윙을 즐기는 일명 ‘배드볼 히터’들은 그만큼 많은 약점을 안고 있게 마련이고, 투수들은 그런 타자에게 굳이 입맛에 맞는 공을 던져줄 필요가 없다. 종으로 휘는 변화구보다 횡으로 휘는 변화구를 주로 던지게 된 것도 이런 변화의 요인이 된다. 예측 스윙, 즉 게스 히팅을 했을 때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공에 대해서는 배트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벗어난 곳에 맞더라도 힘으로 이겨낼 수 있겠지만 낮게 떨어지는 공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배트는 어디까지나 길쭉한 물건이니까.

어쩌면 스윙방식의 변화가 더 밀접한 이유일 수도 있다. 다리를 들어 올린다던지 아니면 스윙을 하면서 테이크 백을 할 경우 공에 맞는 포인트에서 강한 힘을 불어넣을 수 있겠지만 그에 따라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에 변화하는 공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단점이 있다. 그러나 웨이트 트레이닝의 활성화 이후 간결한 스윙에서도 강한 힘을 쏟는 게 가능해지면서 타자들이 공의 궤적을 더 오래 공을 본 뒤에도 장타를 때려낼 수 있게 됐다. 짧은 스윙, 긴 타구. 이론상으론 불가능 한 일이지만 실제론 가능해졌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타자들의 타격 폼을 분석할 때 꼭 큰 스윙을 하는 선수인지, 간결한 스윙을 하는 선수인지를 구분한다. 호쾌한 스윙은 전자에 가깝고, 빠른 배트 스피드는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올 시즌 프로야구에 대입해보면 나란히 홈런 1위를 달리고 있는 가르시아와 김태균으로 비교된다. 가르시아는 맘에 들지 않는 타격을 했을 때 방망이를 부러뜨리는 성격처럼 시원한 스윙으로 결정적인 타구를 만들어내지만 그만큼 삼진도 많이 당한다. 반대로 김태균은 저렇게 치고도 넘어갈까 싶을 정도로 좁은 손목과 몸통 사이에서 짧은 스윙으로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기고 있다. 그의 홈런이 구장 탓이란 오해가 나올 정도로 그의 스윙은 우리가 과거에 보던 것에 비해 너무 간결하다.

예전까지 홈런타자들의 전반적인 이미지가 가르시아와 같은 모습이었다면 푸홀스의 등장 이후 이런 흐름이 변하기 시작해 한국에서는 김태균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메이저리그에도 하워드 같은 타자가 있는 것처럼 이런 흐름이 단숨에 바뀌고 있다거나 이제는 푸홀스나 김태균처럼 쳐야만 한다고 말할만한 단계도 아니다.

한국야구도 이젠 예전의 천편일률 적인 지도로 FM의 타격 폼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모든 선수들을 맞추려 하는 시대는 지났다. 김성한이나 박정태의 자세가 신기하다고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요즘은 선수 각자에게 맞는 자세를 유지시키면서 단점을 보완하려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2루나 유격수, 중견수가 김태균처럼 웨이트를 할 수도 없다. 또 상대가 분석을 하거나 말거나 칠 놈은 언젠간 친다.

답은 없다. 가르시아든 김태균이든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이든 그냥 각자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로 가는 거지.

-mlbpark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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