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스포츠 클럽]끝까지 영예로웠던 오사다하루

  • 입력 2008년 9월 29일 08시 48분


그를 대하면 편안하고 온화함을 느꼈다. 그리고 진솔한 대화 속에 담백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오만방자한 언행으로 가끔 우리를 성나게 만든 일본 야구인도 있지만 적어도 그만은 겸손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향기 같은 게 뿜어 나온다는걸 느꼈다. 난 왜 그럴까를 몇 번이고 생각한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야구 우상 중 한명이어서 일까? 그의 부친이 중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인이란 생각이 덜해서 일까? 등등.

WBC땐 일본과의 경기를 앞두고 제법 많은 이야기를 긴 시간동안 나누었고, 호텔에서도 마주치면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낀 오사다하루(왕정치)감독에 대한 인상이었다. “일본은 끝났으니 한국이 결승에 올라서 우승하길 바란다” 란 덕담을 나에게 남긴 채 미국 애너하임의 호텔을 떠난 그가 멕시코가 미국을 이겨주면서 일본이 기사회생을 했고, 절망적이었던 일본이 우리나라와 쿠바를 꺾고 WBC 첫 우승을 이룬 사실은 야구팬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의 감독직 은퇴소식을 접하고 화면으로 보면서 야구인으로 참 행복한 사람이자 정말 성공한 사람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9월24일 오릭스와의 마지막 홈경기 때 보여준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은 오로지 그를 그라운드에서 마지막으로 본다는 감격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가 약해진 몸과 홀쭉해진 얼굴로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걸어서 돈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었고 그날 경기 또한 졌지만 야후 돔 감동의 물결은 그가 위대한 야구선수인 동시에 훌륭한 인격을 소유한 체육인이란 걸 보여주었다.

떠나보내는 선수들의 울먹이는 모습과 야구천재로 불리는 이치로도 멀리 미국에서 자신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고(드래곤볼의 카린상) 얼마 전 8년 연속 200안타를 친 후 축하전화 때 눈물이 날 뻔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위상과 인격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 한 단면이라 생각된다.

외다리타법을 완성한 그는 며칠마다 일본의 다다미를 바꿔야 할 정도의 엄청난 노력으로 세계홈런왕(868호)이 되었고, 일본시리즈 우승, WBC우승감독까지 했으니 그만큼 선수와 지도자로서 성공한 야구인은 세계야구사에 없다. 건강 때문에 미련 없이 감독직을 던지고 화려한 조명 속에 무대 뒤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야구계나 체육계도 그와 유사한 장면들이 많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펴보면 우리 체육계에도 그런 인물들이 꽤 많다. 우리의 우상들 또한 영광스러운 은퇴식과 함께 현역 스타들도 그런 영광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귀감이 되는 실적과 언행을 쌓아가길 기대해본다. 큰 영예는 주위에서 주는 것 같지만 본인 스스로 긴 시간 동안 만들어가야만 한다.

-야구해설가

-오랜 선수생활을 거치면서 감독,코치,해설 생활로 야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즐긴다. 전 국민의 스포츠 생활화를 늘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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