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고희를 넘어 80을 바라보는 석양이지만 공을 몰며 이 넓은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만큼은 20대의 청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듭니다”
지난 26일 서울의 한 운동장에 힘이 펄펄 넘쳐 보이는 축구 단원들이 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조기축구단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70세가 넘는 노인들로 뭉쳐진 장수축구단원들이다. 장수축구단원 중 최고령은 무려82세, 그야말로 세계 최고령 축구팀인 셈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눈을 의심케 할 만큼 회원들의 몸놀림은 대단했다. 요리조리 현란하게 몸을 움직이며 공몰이를 하는 공격수, 대기권을 돌파할 만큼의 강한 킥을 날리는 수비수, 골을 막아내기 위해 사정없이 몸을 날리는 골키퍼, ‘노인들이 뛰면 얼마나 뛸까?’ 하던 선입견을 단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이렇게 정신없이 뛰기를 무려 25분씩 4쿼터, 쉬는 시간 5분 포함하여 장장 2시간동안 긴 경기를 펼치고도 체력은 남아있는 듯 했다. 정신없이 뛰고 들어오는 선수 한명에게 “힘들지 않으세요?” 라고 질문하자 “이 정도는 어림도 없지 내가 아직도 100m 16초 뛰는 사람이야” 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장수축구진흥회’는 지난 5월 21일 설립한 전국규모의 70세 이상 고령자 축구 연합회다. 전국 26개 팀 10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과 섞여서 뛰려다 보니 패스도 잘 못 받고 소외당하는 기분이 들어 이렇게 고령자들만을 위한 축구팀을 결성하게 됐다고 한다. 특히 성동구팀은 올해로 3년째 축구를 하고 있어 체력과 실력들이 뛰어나다.
이들은 일주에 하루 모여서 경기를 하지만 “주말 경기를 위해 일주일 내내 음식조절을 하고 체력을 단련 한다”고, “게다가 주말에 나와서 골을 넣고 나면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 풀어서 좋고 골 넣은 기분으로 다음 한주 활기차게 살게되니 자연히 건강해 질 수 밖에 없다” 고 한다.
“나이 70이 넘으면 사회 활동이 정지되다 보니 많은 고령자들이 스스로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살게 되는데 우리는 건강한 몸을 유지함으로써 병원비 등으로 발생하는 간접비용을 줄이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건강한 사회 이룩하는데 일조하는 겁니다.”
실제로 남종우(74)씨는 10년전 전립선암으로 오래 살지 못할 것 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는 회원이다. 또 꾸준히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신경이 살아있어서 평소 길을 걷다가도 장애물 있으면 감각적으로 대처하게 되고 다른 노인들 보다 다치는 일이 훨씬 적다 고 한다.
장수축구회에는 과거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던 실제 축구선수도 있다. ‘이북5도’팀에 속해 뛰고 있는 박종환(70)씨는 83년 한국청소년대표팀 감독을 맡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 4강신화를 이뤘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 장수축구 동대문구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이우봉(75)씨는 62년도에 대표선수 활동을 했고 국제 심판까지 지냈다. “가끔 옛날을 회상하면 너무 늙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아직도 축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고 한다.
현제 장수축구회의 운영비는 자체 회비로 조달하고 있다. 장수축구회 김길문 회장은 “노인들이 재정능력이 없다보니 나오고 싶어도 회비가 부담돼서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며 “정부 지원이 닿아서 누구나 참여하고, 노인들의 생존을 위함이 아니라 생활 자체를 보람 있게 살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고 소망을 밝혔다.
장수축구진흥회는 오는 10월 22일부터 23일 까지 수원 월드컵 보조경기장에서 정몽준 후원회장배 ‘전국 장수축구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에는 20개 팀이 참가할 예정이다.
글, 영상=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