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 스포츠 에세이] ‘늪에 빠진 車’ 달릴 수 있을까?

  • 입력 2008년 9월 30일 08시 54분


축구의 매력 중 하나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양 팀의 과거 전적, 최근 성적, 감독의 성향, 핵심 선수들의 컨디션 등을 꿰뚫고 있어도 승패를 가늠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단기전에 작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들까지 더해지면 결과를 미리 알아맞히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친구들과 내기를 하고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마음을 비우고 그냥 축구를 즐기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축구 경기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하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런 현상들을 사람들은 ‘매직’이라고 부른다. 그 마법 같은 단어 한 마디에, 경기에 패한 팀들과 내기에 진 이들은 잠시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지난 여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2008에서 ‘깜짝쇼의 종합선물세트’였던 터키대표팀은 자국 축구팬들에게 큰 행복을 선사했을 진 몰라도, 상대 팀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였다. 8강전에서 연장전, 승부차기 끝에 터키에 패한 크로아티아의 슬라벤 빌리치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겐 분명히 ‘X-팩터(변수 X)’가 있다.”

그 변수의 ‘망령’'이 아직도 유럽 대륙을 활보하고 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1억 파운드에 달하는 거액을 쏟아 부었던 잉글랜드의 토트넘 홋스퍼가 6경기 째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프리미어리그 꼴찌로 처져 있는가 하면, 별다른 전력 보강이 없었던 리버풀은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은 열흘 전 베르더 브레멘과의 홈경기에서 2-5로 패한 뒤 지난 주말 하노버 원정에서도 0-1로 무릎을 꿇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2-5의 악몽은 지난 주말 K리그에서 되풀이됐다. 전반기에 연승 가도를 달리던 수원이 안방에서 전북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선수들이 수원을 만나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설명했지만, 어쨌든 그런 결과를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성남과 수원이 나란히 패하면 서울이 승리를 거둘 경우 ‘어부지리’로 공동 선두에 나설 수 있다는 프리뷰를 읽은 기억이 나긴 하지만, 설마 그러랴 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성남, 수원, 서울의 3강 구도가 될 거라는 시즌 초의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맞은 것 같다. 이제 정규리그 6경기가 남아 있으니 올 시즌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수도권의 축구팬들에겐 즐거운 가을이 될 거라는 점이다.

정훈체 |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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