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가온 마을서 본 8163m 마나슬루봉 구름 속 보일듯 말듯
5100m 베이스캠프는 온통 눈밭… “두렵지만 여기가 나의 집”
방콕을 경유해 네팔 카트만두로 향하던 비행기는 거센 비바람에 막혀 인도 콜카타로 방향을 돌렸다. 콜카타 공항에서 기름을 채우고 카트만두에 도착한 시간은 예정보다 7시간이나 늦었다. 호텔로 가는 동안 온통 쓰레기와 오물덩이가 쌓여 있는 거리를 한참 지난다. 히말라야를 사랑한다면 이 회색빛 도시도 가슴에 품어야 한다.
다음 날 우리의 셰르파인 옹추의 집에 가서 지난번 맡겨 놓았던 장비들을 점검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등정을 마치기 위해 베이스캠프까지 헬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9월 26일 현재 이 도시에 있는 민간인 헬기 4대 중 2대는 고장이고 2대는 인도와 네팔 국경의 수재민 돕기에 나섰다고 한다. 고장 난 헬기를 고치려면 2, 3일 더 기다려야 한다.
사실 이번 등반은 좀 늦었다. K2 사고로 숨진 동료 3명의 49재(19일) 때문이다. 등반 파트너인 김재수 대장은 세 사람의 사진을 가져왔다.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히말라야인데 K2 말고 다른 봉우리도 두루두루 보라는 의미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마나슬루 산은 마을을 지켜주는 신이다. 카트만두에서 불과 한 시간 날아왔지만 오지 중의 오지다. 장작불로 밥을 짓고 야크 똥을 태워 방을 덥힌다.
9월 30일. 지난밤 시작된 비는 새벽 무렵 땅이 파일 만큼 굵은 빗방울로 변했다. 양철 지붕을 쿵쿵 때려 잠을 설쳤다. 마나슬루 정상은 구름 속에 숨어 있다. 들리는 소식에 여러 원정대가 예전에 텐트를 쳐 놓았던 캠프2까지 진출했으나 그동안 내린 눈 때문에 텐트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모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아내여, 나는 죽으러 간다’를 읽었다. 결혼 6개월 만에 북극 횡단에 도전해 1년 7개월 동안 1만2000km를 개 썰매로 단독 횡단하면서 부인에게 쓴 애절한 편지글들을 모은 책이다. 혹독한 자연과 싸우며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내게 힘을 준다.
10월 1일. 드디어 출발. 오전부터 셰르파들이 짐을 나눠 지느라 부산하다. 한 명당 30kg 정도의 짐을 지는데 남녀 구분이 없다. 엄마의 짐을 열 살 남짓 딸이 나눠진다. 남루한 이들의 모습이 애처롭지만 원정대는 이들에겐 큰 수입원이다.
마을을 출발한 지 5시간 반 남짓 해발 5100m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온통 눈밭이다. 고도를 1100m 올린 탓인지 머리가 무겁다. 스쳐가는 곳이지만 지금은 여기가 나의 집이다. 아직도 마나슬루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산악인>
● 고미영 씨는…
△1967년 전북 부안 출생 △1985년 인천 인성여고 졸업 △1986∼97년 농림부 공무원 △1989년 스포츠 클라이밍 입문 △1995년부터 전국등반선수권 9연패 △1997년부터 아시아 챔피언십 클라이밍 6연패 △2006년 히말라야 초오유(해발 8201m) 등정 △2007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50m), 브로드피크(8047m), 시샤팡마(8046m) 등정 △2008년 히말라야 로체(8516m)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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