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왼손에 직접 뜸을 뜨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큰 게임을 앞두고 심각(?)하거나 긴장도 될법한데 얼굴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김 감독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발가벗고 인터뷰하는 꿈을 꿨는데 그게 길몽이었나 보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좋은 꿈을 꿨느냐’고 묻자 “한국시리즈도 아닌데…. 별 꿈 꾸지 않았다”면서 “네 번째라 그런지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올해로 사령탑 데뷔 5년째를 맞는 김 감독은 2006년을 제외한 네 시즌 동안 가을잔치에 나섰습니다. 2005년과 지난해에는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요. 김 감독은 “모든게 감독 뜻대로 되는 거라면 오죽 좋겠느냐. 감독이 아무리 이기려고 기를 쓴다고 해도 이길 게임은 이기고, 질 게임은 지더라”면서 “감독이 내는 작전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얼마 되지 않는다. 결국은 선수들이 해주는 것이고 감독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줄 뿐”이라고 하더군요. “스스로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게 경험인 것 같다”는 말도 여러번 했습니다. 그러면서 “올림픽 금메달도 따봤지만 한국시리즈 우승도 솔직히 해보고 싶다.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선수들이 열심히 해 준 덕분”이란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루 전, 화기애애했던 미디어데이 얘기를 꺼내자 “그렇게 분위기가 좋았던 건 나도 처음”이라면서 “그라운드에 서면 상대고 적이지만 평상시에야 그럴 이유가 없지 않느냐. 참 기분이 좋았다. 결국 누구 하나는 지고 누구 하나는 이기겠지만 그건 그 때 이야기고…”라고 하더군요.
한참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김 감독은 “이제 몸 좀 풀어야겠다. 그래야 감독도 머리가 맑아지지”라며 살며시 책상에 있던 글러브와 모자를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곤 그라운드로 향했습니다. 감독 5년째, 4번째 포스트시즌을 그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잠실 |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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