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팀 플랜 오류를 상쇄한 시즌 플랜의 성공
언젠가 SK 김성근 감독은 ‘눈덩이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풀이하자면 처음에 눈을 굴려서 덩어리를 만들기가 힘들지, 일단 만들어지면 알아서 굴러가면서 그 덩어리가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는 논지였다.
이 논점을 대입하면 왜 SK가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가장 먼저 일본 고지에 마무리훈련 캠프를 차렸는지 납득할 수 있다. 가장 빠르게, 가장 강도 높게 진행된 SK의 훈련은 페이스를 시즌 개막에 맞춰놓는데 중점을 뒀다. 김 감독의 이런 시즌 구상은 ‘5할 승률을 유지하다 여름에 승부를 건다’는 야구계의 보편적 레이스 운용을 뒤엎는 발상이었다. 실제 이 방식은 SK의 무한경쟁 시스템과 맞물리며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주효했다.
사실 작년과 비교하자면 용병 영입도 평년작 이하였고, FA로 잔류한 이호준은 장기 이탈한데다 돋보이는 신인도 없었다. 그러나 “따로 훈련시키거나 사인 내지 않아도 알아서 풀어가는 수준이 됐다”란 평가처럼 SK에 김성근 야구가 깊숙하게 침투했고, 위기를 극복하는 내성으로 작용했다.
○ 데이터와 직감의 조화, 그리고 천운
김 감독은 “일단 우리 팀 선수와 싸운다”며 가장 비중을 두는 개막전에서 정상호의 연장11회 끝내기 홈런으로 LG에 5-4 승리를 거뒀다. 이후 곧장 3연패에 빠지자 김 감독이 “시즌 포기” 발언까지 꺼낸 데서도 스타트를 중시하는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곧바로 SK는 불펜을 앞세워 7연승을 달렸고, 4월에 단 5패만 당했다. 1위 독주 채비가 갖춰지는 와중에 두산-LG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고, 6월엔 윤길현 사태마저 터졌지만 결과적으로 팀 결속력이 강화되는 쪽으로 작용했다.
특히 6월 6-8일 롯데 원정 3연승 후 SK를 제어할 팀은 사라졌다. 이미 7월부터 1위가 기정사실로 취급됐고, 체력이 떨어지던 8월부터 베이징올림픽이 개시된 것도 호재였다. 후반기 두산의 끈질긴 추격을 뿌리치자 김 감독의 통산 1000승(9월3일 히어로즈전)과 SK의 시즌 최다승(83승) 등 경사가 줄을 이었다.
두산과 2년 연속 붙은 한국시리즈 들어와서도 3차전 9회말 더블 플레이 성공과 4차전 불펜 계투책 성공 등 김 감독의 전술은 천운과도 결합됐다.
잠실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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