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을 처음 만난 때는 그가 LG 감독을 그만두고 야인으로 머물러 있던 2004년 무렵으로 기억된다. 당시 지바 롯데 코디네이터로 부임하기 전이었던 김 감독은 모 스포츠신문에 관전평을 기고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점은 기자석에 수첩을 들고 앉아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메모하는 광경이었다.
대다수 관전평이 일단 구술을 하고, 기자가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관례였지만 김 감독은 자기가 직접 글을 쓴다는 후문이었다. 여기다 되도록 직설 화법을 피하고 완곡하게 표현하는 관전평의 보편적 선례와 판이하게 김 감독의 글은 신랄했고, 직설적이었다. 현장 감독들이 불편하게 여길 정도였다. 이후 김 감독과 직접 대면한 계기는 그가 SK 감독에 부임한 뒤 맞은 2007년 오키나와 캠프 때였다. 당시 오키나와 구시카와 캠프에 파견된 기자들을 위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했던 김 감독은 앉은 자리에서 5시간 이상 야구에 대한 강의를 했다. 단지 SK 선수에 대한 얘기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야구의 세계화 등 화제의 스케일이 달랐다.
김 감독의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가 감독 철학론인데 첫 대면에서 그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LG 사령탑이었던 김 감독이 비록 패배했지만 적장인 삼성 김응룡 감독에게서 ‘야구의 신’이란 칭호를 얻었던 바로 그 경기였다.
김 감독은 나중에 “세상에 야구의 신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지만 “이기려고 집착하는 김응룡 감독의 수가 어느 순간 보이더라. 그러더니 불쌍해 보이더라”라고 회고했다. 돌이켜보면 김성근 야구의 터닝 포인트는 바로 그 마지막 패배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코디네이터를 거쳐 한국 무대에 복귀한 김 감독은 2007-08년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성취했다. 특히 그의 우승은 세밀한 시즌 플랜과 데이터와 직감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김성근식 방식의 승리이기에 ‘야구의 신’다운 권위마저 부여된 듯한 느낌이다.
잠실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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