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20)은 경기 전, 알약 한 개를 물병에 넣었다. 이내 무색의 물빛은 올 가을 유행이라는 연보라로 변했다. 승리에 대한 갈증으로 벌컥 물을 들이 킨 김광현은 “이거 먹으면 담이 싸악 사라진다”며 웃었다. 알약의 정체는 마그네슘. 베이징올림픽 때 처음 마그네슘을 복용한 김광현은 어깨와 등 근육을 푸는데 효험을 봤다. 귀국 후 트레이너에게 부탁해 마그네슘을 대량구매한 뒤에는 팀 동료들 중에도 복용자가 늘었다. ‘다 내덕’이라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김광현의 등 뒤로 박재홍이 지나갔다. 박재홍은 현대 시절부터 햄스트링부상에 시달릴 때면 독일에서부터 마그네슘을 공수했다. 김광현의 멋쩍은 웃음. 96년, 괴물로 불리던 박재홍은 MVP를 놓치고,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김광현은 ‘거꾸로’ 도전이다. “작년 신인상시상식 때는 얼마나 쑥스럽던지…. 3승 투수였잖아요. 경기 끝나면 양복 한 벌 맞추러 가야죠.” 한껏 여유를 부렸다.
1년 만에 16승 투수로 거듭난 김광현은 경기가 시작되자 MVP라이벌인 두산 김현수를 압도했다. 1회 1사 3루 위기에서 3루수 뜬 공 아웃. 김광현은 1차전에서도 김현수를 3연타석 삼진으로 요리했다. 김광현은 “(1차전부터) 현수 형 감을 망쳐놓은 것 같아 미안하다”며 MVP 경쟁에서 한 걸음 달아났다.
잠실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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