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한국시리즈’ 10월의 마지막 밤 붉게 물들다

  • 입력 2008년 11월 1일 08시 43분


10월의 마지막 날, SK의 빨간 응원석은 말 그대로 ‘불타올랐다’.

31일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SK의 한국시리즈 5차전은 0-0 상황이 계속되는 팽팽한 투수 전 만큼이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양 팀 응원단의 응원 공방이 이어졌다. 하지만 7회 초 추가 마침내 붉은 쪽으로 기울었다.

2사 만루서 박경완의 3루 쪽 강습 타구를 두산 3루수 김동주가 놓치고 SK가 선취점을 뽑자, SK 응원단은 포효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예감한 듯 빨간색 막대 풍선, 깃발, 모자가 하나 돼 광채를 빛냈다. SK는 1-0으로 앞선 8회 초 2사 1,3루서 최정의 좌전 안타로 한 점 더 도망갔다. 이 점수는 이들에게 사실상 ‘게임 오버’를 의미했다.

>○ SK팬. 승리는 우리 것

SK 팬들은 우승의 감격으로 하나가 됐다.

비록 옆에 앉은 사람이 앞으로 다시는 못 볼 타인일지 모르지만, 이날만큼은 ‘형제’가 됐다. 우승이 만들어낸 일체감이다.

대학생 이덕원 씨(건국대 3년)는 “중간고사 때문에 포스트시즌을 못 보다 오늘이 마지막 경기가 될 것 같아 왔는데 너무 기분 좋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SK팬이 됐는데 너무 기쁜 날이다”고 감격했다.

이 씨의 여자 친구 이지원 씨도 “수 많은 데이트 장소 중 야구장에 온 게 잘한 것 같다”며 기쁨을 드러냈다.

김광현의 열성 팬을 자처한 직장인 문주성 씨는 “두산이 광현이를 못 넘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기분 최고다. 술 마시러 간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SK텔레콤 신지수 매니저는 “지는 경기는 재미없다. SK 경기가 재미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낸 뒤 “동료들과 함께 인근 신천으로 자축하러 가야 겠다”고 말했다.

SK 그룹 계열사 직원 이 모씨는 “오늘 한 경기를 져도 경기가 재미있을 뻔 했다. 어차피 SK가 이길 거니까”라며 승자의 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 두산팬, 졌지만 잘 싸웠다

두산 팬들 눈에는 아쉬움의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2-0으로 뒤지던 8회 말 무사 1,2루에서 홍성흔의 잘 맞은 타구가 SK 중견수 조동화의 다이빙 캐치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후속 타자 오재원의 안타성 타구가 좌익수 박재상의 글러브에 빨려들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2년 연속 SK에 역전패 해 안타까움은 더욱 컸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경한 씨는 “떨리는 마음으로 왔다. 3,4차전을 더블 플레이로 졌지만 오늘만 이기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종욱의 열혈 팬인 직장인 박초롱 씨는 “비가 오면 곰들이 미친다. 오늘 아침 비가 왔기 때문에 이길 거라고 믿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팬들은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졌지만 매 경기 긴장감을 선사하면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끝까지 응원했다. 대학생 김지철 씨는 “두산의 집중력이 떨어진 게 아쉽다”면서도 “선수들이 피곤해 보여 많이 안쓰럽다”고 선수들을 걱정했다.

잠실 |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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