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김성근 감독은 3일 한국시리즈 2연패를 기념해 본사를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은 3차전과 5차전에서 9회 만루 기회를 잡았지만 SK의 신들린 듯한 수비에 모두 무너졌다.
SK는 탄탄한 조직력에 운까지 따른 덕분에 2년 연속 우승컵을 안았다.
김 감독은 13일부터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을 꺾고 우승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은 다른 분이 맡아야 한다”며 사양했다.
66세의 노장 감독은 ‘야구의 신’으로 불렸지만 한 번도 국가대표 감독을 맡은 적이 없다. 대표팀 사령탑 욕심을 낼 만도 한데 그는 “내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 기술위원회를 열고 한화 김인식 감독을 WBC 감독으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하일성 사무총장은 “김성근 감독이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고사해 김인식 감독을 추대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이끈 두산 김경문 감독마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며 물러나 대안이 없었다는 것.
내년 3월 열리는 WBC 감독은 부담이 큰 자리다. 한국야구가 2006년 WBC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한 상황에서 내년 WBC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KBO는 올림픽, 아시아경기 등 국제대회 때마다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데 애를 먹었다. 대표팀 감독은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역적이 되는 자리인 탓이다. 하지만 KBO는 명확한 대표팀 감독 선정 기준이 없었다. ‘이 감독 안 되면 저 감독’을 찾아다녔다.
결국 내년 WBC도 떠밀리듯 김인식 감독이 맡게 됐다. 김 감독은 “형님(김성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몸은 내가 더 아프다고 하니까 ‘나는 속이 아프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묘한 뉘앙스를 남기는 말이다.
어찌 됐건 또다시 이런 ‘대표팀 감독 수건 돌리기 해프닝’이 벌어져선 안 된다. 이번 기회에 KBO는 대표팀 감독 선정 기준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