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 처음엔 전혀 몰랐지. 그런데 취임하자마자 11월에 제주도로 선수들 데려가더니 사람을 잡더라고. 이듬해 우리가 2위를 했는데 처음으로 전주에서 암표가 나돌았죠. ‘우리도 이기네’란 생각을 처음 했다니까. 시즌 중간 고비가 왔는데 선수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제주도에서 X빠지게 훈련한 거 아까워서라도 쓰러지면 안 된다’고 하더니 그 다음에 13연승을 합디다. 13연패는 상상할 수 있었어도…. 내가 19년간 홍보 생활하는 동안 딱 4년 보람을 느꼈는데 96-97년 쌍방울 시절하고, 작년과 올해 SK에서였어요. 프런트는요, 성적 날 때 자부심을 느끼는데 묘하게도 그 양반 있었을 때 그 희열을 맛봤어요.
그때 정말 까칠했죠. 처음 고백하는데 지금도 서운한 일화가 하나 있어. 98년인가 공중파 방송에서 45분짜리 김 감독 다큐멘터리 찍으러 오겠다는데 감독님이 경기에 신경 써야 된다고 거절하는 거야. 쌍방울이 지금 SK처럼 인기구단도 아니고, 나야 어떻게든 노출되게 하고 싶은데. 그래서 4-5번을 설득해서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하필 그때 팀이 연패 들어가고, 카메라는 그래도 계속 밀착해서 따라붙고. 결국 한 소리 들었는데 야속하더라고. 또 그때엔 야구에 방해된다고 선수들 인터뷰도 안 시켜줘서 내가 감독님 몰래 빼돌리다 들킨 적도 있었어요. 그때 비하면 SK와선 참 많이 바뀌셨죠. 지바롯데 거치고 연륜 쌓이고, 우승까지 하면서 여유가 생기신 것 같아.
쌍방울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야구에 대한 집념은 둘도 없어도 인간미는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감독 딱 그만두시고 사석에서 만나니 옛 동료처럼 반갑게 대해주시더라고. 일부러 팽팽한 긴장감을 스스로 만드신 것 같아. 일례로 그 분이 쌍방울 감독 시절 1년에 딱 3번 집에 들어갔어요. 서울 원정을 가도 집에 안 들어가. 지금까지도 그분처럼 자기 일에 철두철미한 분은 못 봤어요. 하다못해 작년에 연예인야구 해설 했을 땐 메모지를 적어가서 사전 리허설까지 하고 방송에 들어갔다니까요.
어쩌다보니 내가 홍보팀장하면서 김인식, 강병철, 김성근 세 분 고수를 다 모셔봤는데 김성근 감독님이 제일 무섭고 어려워요. 강 감독님한텐 떼도 쓰고 그랬는데 김 감독님에겐 감히 그럴 생각도 못하지. 그런데 내가 작년에 첫 우승하고선 울면서 감독님 품에 안겨들었다니까. 올해도 우승해서 감독님 덕분에 2년 연속 도쿄에 들어가니 얼마나 좋아.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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